교구별 시복 추진
한건 신부 / 순교성지사목 handom@naver.com
1982년 교황 방문과 103위 복자가 시성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의 신자들은 기뻐하였다.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1982년 9월 9일에 제1차 시복시성 추진위원회를 열고 초기 교회 순교자의 시복시성 추진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그 배경은 103위 복자는 1839년 기해박해 이후 순교자들이고, 한국교회의 설립과 초기 교회를 형성하는데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이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기 교회 순교자들의 시복시성 추진이 103위 시성 추진과 상충될 소지가 있어 일시 중단되었다.
1984년 103위 시성식 이후, 6월 24일 2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 김남수 주교는“한국천주교회 창립 선조들인 광암 이벽 요한 세자와 그 동료 순교자 및 증거자”로 98위 순교자 시복 추진을 선언하였다. 이 선언은 수원교구가 중심이며, 대상자들의 선정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주교회의에서는 시복 추진을 해당 교구별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전주교구는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4위 순교자 시복을 추진하였고, 1989년 4월 12일 시성성 공문을 통해“장애없음”을 통보받았다. 수원교구는 1996년“윤유일 바오로와 동료 7위”순교자 시복을 추진하여, 그해 10월 24일 시성성으로부터“장애없음”을 통보받았다.
부산교구는 1987년‘교구성지개발위원회’를‘부산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하며, 본격적으로 순교자 현양 사업을 펼쳐나갔다. 1993년‘부산교회사연구소’를 설립하고, 교구 내 순교자들의 발굴과 학술조사를 준비하며 그들의 시복 추진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