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희 유리안나
석포성당 · 시인
“인생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살다가 하느님의 이름 아래 묻히고 부활하련다.” 이 구절은 훗날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수사가 되신 민성기 요셉 신부님이 수도회 입회 전, 24살의 청년 시절 일기장에 ‘인생관’이라는 제목으로 남긴 글귀입니다. 젊은 나이에 이미 삶과 죽음, 그 너머의 부활까지 고백했던 신부님은 당신의 생애를 하느님께 오롯이 봉헌하셨습니다. 저의 시동생이기도 한 신부님은 지난 2004년 10월, 48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산행 중 홀연히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육신은 청년 시절의 다짐처럼 하느님 이름 아래 잠드셨지만, 신부님의 삶은 우리 곁에서 여전히 향기롭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 거친 파도 소리가 들리는 그곳에는 신부님이 건립하신 전복 모양의 작은 성당이 있습니다. 아씨시의 ‘포르치운콜라’처럼 소박하고 아름다운 이곳은 이제 지친 영혼들이 머무는 포근한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성전 입구에서 환한 미소로 순례객을 맞이하는 사진과 카페에 남겨진 신부님의 글들은, 24살의 일기장에 적었던 그 ‘부활’의 약속이 오늘날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말없이 증명해 줍니다.
흔히 죽음이란 기억 속에서 점차 잊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떠났을지라도 그가 남긴 사랑의 흔적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면, 그 존재는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마라도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잠시 쉬어가는 순례객들의 가슴 속에, 신부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영혼에 선한 울림을 주는 삶, 그것이야말로 죽음을 이긴 참된 부활의 증거가 아닐까요.
청년 민성기가 다짐했듯, 우리 또한 각자의 삶 속에서 고운 사랑의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척박한 땅에 희망의 쉼터를 일구신 그 마음을 닮아, 우리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기억이 되는 ‘부활의 증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빈 무덤 앞에서 희망을 찾았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마라도 포르치운콜라에서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습니다. 육체는 유한하나 사랑은 영원하기에, 마라도의 푸른 바람이 되어 우리를 깨우는 신부님의 영성이 우리 모두의 삶 속에 늘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