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2270호 2014년 4월 27일
가톨릭부산
103위 순교복자의 시성 청원과 어려움

103위 순교복자의 시성 청원과 어려움

 

한건 신부 / 순교성지사목, handom@naver.com

 

  1968년, 한국교회는 병인박해 순교자 24위를 시복함으로써, 103위 복자를 갖게 되었다. 이때 각 교구에서는 순교복자 기념 성당을 지정하였는데, 우리 교구에서도 광안성당을 순교복자 기념 성당으로 지정하고, 이정식(요한)을 비롯한 8분의 순교자 현양 사업을 시작하였다.

  신자들은 103위 순교복자가 성인이 되는 것을 희망하여, 1971년 12월 주교회의에 건의하였다. 비로소 1976년 주교회의 춘계총회에서 103위 순교복자들의 시성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고, 시성추진 책임을 김남수 주교가 맡았다. 김남수 주교가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시성추진을 파리외방전교회에 맡기려고 하였지만, 전교회 측에서“두 번의 시복식은 남이 해주었으니 시성식만은 한국교회가 책임지고 추진하는 것이 좋다.”면서 거절하였다.

  한국 103위 순교복자들의 시성 건을 1976년 10월 15일 시성성에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77년 4월 13일 자로 한국교회의 청원을 윤허하면서 공표하였다. 시성 건을 진척시킬 기적사례가 나오지 않아 4~5년이 흘러갔다. 1982년 5월 김남수 주교는 시성성에 기적관면을 신청하였지만, 반드시 기적이 있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만 받았다.

  시성 수속은 시복 후 복자들의 전구로 기적이 일어났음을 전제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나, 시성을 추진하면서 시성성에 기적으로 보고할 만한 것을 한 건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103위 순교복자들을 널리 알려 신자들이 공경하고 전구를 통해 기적을 일어나야 했는데, 그런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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