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26호 2026년 5월 10일
가톨릭부산
뿌꿈놀이, 그리고 달


박선정 헬레나

남천성당 · 인문학당 달리 소장


   ‘뿌꿈놀이’라는 단어를 아는가. 어릴 적 내가 자란 시골에서 하던 밤의 숨바꼭질이다. 저녁밥을 먹고 어둑해지면 아이들은 마을 당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밤이라 혼자 찾아다니기에는 무서워, 우리는 두 편으로 나뉘어 함께 숨고 함께 찾았다. 동네 전체가 하나의 지도가 되었고, 텃밭도, 심지어 우물 안도 모두 숨을 곳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 놀이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달’이었다.


   보름달이 뜨면 세상이 훤히 드러났다. 그런 날이면 술래는 달빛에 감사했으며 숨은 아이들은 그 밝음을 원망했다. 반대로 그믐달 밤에는 모든 것이 어둠에 잠겨, 아이들은 웃다가도 금세 비명을 질렀다. 이처럼 그 시절 달은 우리와 함께 놀던 동무였다.


   요즘의 달은 외롭다. 일 년에 두어 번, 큰 행사가 있는 날에나 찾는 쓸쓸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도시의 밝은 가로등과 빌딩 사이에서 달은 이제 쉽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우리는 어느새 달을 올려다보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있다. 한 달 내내 밝은 가로등과 전깃불이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도 이와 닮아 있다. 우리는 더 밝고, 더 빠르고, 더 분명한 것에 익숙해졌다. 손에 잡히고 즉각적으로 확인되는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 강한 빛은 다른 빛을 밀어낸다. 달빛처럼 은은하고, 기다려야 보이며, 어둠 속에서야 느껴지는 것들. 사랑도, 양심도, 신앙도 그렇게 밀려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뿌꿈놀이는 단순한 숨바꼭질이 아니었다. 숨은 아이들과 술래는 서로를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라, 서로를 찾고 또 ‘찾아짐을 기다리는 존재들’이었다. 놀이는 하나의 역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역할을 바꾸어’ 이어졌다. 우리는 달빛 아래에서 상대의 입장도 되어보고, 서로를 잃지 않는 법도 배웠던 것이다.


   달이 빌딩 너머로 잘 보이지 않는 이 밤에 문득 그때를 떠올려본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달빛’의 보호 아래에서 함께 웃었고 서로를 놓치지 않았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도, 더 밝은 것, 더 빠른 것, 더 분명한 것만을 좇고 있는 지금과는 다른 시절이었다. 그렇게 지금의 우리는 달빛도 하느님의 빛도 점점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그 밤처럼, 달과 함께 놀던 그 마음으로, 오늘은 전깃불을 잠시 끄고 하늘의 달을 찾아봐야겠다.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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