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28호 2026년 5월 24일
가톨릭부산
배교자의 마음, 하느님의 마음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온천성당 · 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조선 후기 천주교 역사에서 우리는 흔히 순교자들의 굳센 믿음을 기억한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은 이들의 용기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러나 그 빛나는 증언 뒤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배교자들이다. 박해와 고문 앞에서 두려움에 무너져 신앙을 부인했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종종 배교를 단순히 믿음의 실패로만 바라본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박해는 매우 혹독했다. 형벌은 개인뿐 아니라 가족 전체를 위협했고, 굶주림과 사회적 멸시까지 감당해야 했다. 그러니 끝까지 버텨낸 순교자들이 위대한 만큼, 무너져버린 이들의 나약함 또한 인간적인 현실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1868년 무진박해 때 부산(동래) 지역에서는 이정식, 양재현을 비롯한 11명의 교우들이 체포되었다. 그들은 47일 동안 옥에 갇혀 혹형 속에서 배교를 강요받았다. 결국 세 사람은 배교하여 풀려났고, 여덟 사람은 끝까지 신앙을 지켜 순교하였다. 아마 배교자들은 신앙을 버린 뒤 깊은 죄책감 속에 살아야 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배교자들이 그러했다고 전해진다. 


   1801년 신유박해 때 관청에 자수했다가 배교하여 경상도 흥해로 유배된 최해두 역시 그러하였다. 그가 남긴 「자책」에는 자신을 깊이 꾸짖는 마음이 담겨 있다. 많은 교우들이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켰는데 자신은 그러지 못했던 사실을 평생 아파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책과 후회 속에만 머물지 않았다. 유배 생활 중에도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비록 죽음으로 순교하지는 못했지만, 이후의 삶을 참회의 마음으로 살아간 셈이다. 이처럼 어떤 배교자들은 다시 교회를 찾아 눈물로 참회했고, 어떤 이들은 숨어서라도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교회 또한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배교자의 이야기는 단순한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동시에 그것은 희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간은 무너질 수 있지만, 하느님의 자비는 그 무너짐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순교자의 용기를 기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넘어지는 인간을 끝까지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조선 후기의 배교자들 역시 어쩌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믿음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는 용기입니다.”


   성령께서 제자들의 닫힌 문을 여셨듯이, 오늘 우리의 굳게 닫힌 마음 또한 다시 열어 주시기를 청해 본다.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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