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1호 2026년 8월 16일
가톨릭부산
하느님의 침묵을 넘어서는 믿음


장재명 파트리시오 신부

가톨릭센터 부관장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어떤 가나안 부인이 만난 일화를 들었습니다. 이 부인은 심하게 마귀가 들린 딸의 치유를 위해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비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침묵 앞에서도 이 부인은 계속해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외쳤습니다. 여인의 계속되는 외침에 돌아온 예수님의 대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마태 15,26)


   차라리 침묵이 더 나을 것 같은 이 대답의 뜻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너희 같은 이방인들에게는 도움을 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부인도 분명히 자신을 향한 이 비유를 제대로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단순히 자신의 청을 거절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을 강아지에 빗댄 경멸적 표현 앞에서 부인이 했던 대답 또한 충격적이었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 15,27)


   이 부인은 예수님께서 빗댄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을 강아지라고 하면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주십사고 청한 것입니다. 이 대답에 예수님께서는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 15,28)라고 말씀하셨고 바로 그 시간에 부인의 딸은 낫게 됩니다. 자신의 청원에 대한 주님의 침묵을 넘어서, 자신의 청원에 대한 거절과 자신에 대한 모욕적인 표현까지 넘어서 이 부인은 주님의 자비를 청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인 부인의 이 믿음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오늘 이 일화를 통해서 우리는, 참된 믿음은 하느님의 침묵을 넘어서야 하고 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주님의 응답이 돌아온다 할지라도 그 또한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침묵 혹은 하느님의 부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믿음은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어떻게 하느님이 이러실 수 있는가!’ 라고 하면서 우리의 이성이 우리의 믿음을 자꾸 흔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성을 넘어서는 것에 대한 이성적 거부 반응은 당연한 것이지만 여기에 믿음이 같이 따라갈 때 그 믿음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침묵 앞에서 의심과 반항심과 절망의 시간을 지나오지 않은 신자가 과연 있을까요? 히틀러가 의기양양하게 일어섰을 때 하느님은 침묵하셨습니다. 본회퍼는 하느님의 침묵 앞에서 인간이 느낄 수밖에 없는 처절한 고통을 지옥 같은 감옥 안에서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처형을 당하기 몇 달 전, 믿음의 마지막 선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침묵을 넘어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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