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5호 2016년 8월 14일
가톨릭부산
반공의 국익

반공의 국익

조영만 신부 / 메리놀병원 행정부원장 bapcho@hanmail.net

  저는 30년 전 콩나물시루 같던 교실에서‘반공포스터’를 그려내 상을 받았던 입상자입니다.  늑대의 얼굴을 한 빨갱이를 때려잡는‘똘이 장군’의 눈으로 그린 반공 포스터는 그야말로 두려움에 대한 컬트적 상상력이 총동원되었습니다.
  그 두려움. 30년이 지난 지금 그 두려움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졌을까? 차별을 만들고 철조망을 세우고 더 크고 강력한 무기를 끊임없이 쌓아올려야 한다는 기저의 두려움을 통해 끊임없이 이익을 채우는 사람들이 지금도“반공주의”의 칼날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민주공화국’의 숱한 갈등과 완만한 해결의 방식은 여전히‘민주’도 아니고‘공화’도 아닌 겁니다.‘민주적’이라면 한 사람의 뜻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정상적 절차와 과정에 입각하여 진행되어야 할 것이고,‘공화적’이라면‘사적이익’보다 평등을 목표로 한‘공적이익’을 중요시하는 최소한의 원칙이 우선되어야 할 것인데, “반공과 국익”말고는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 앞에 좌초된 것들이 많지요. 그들이 말하는 국익이 정의, 평등, 박애, 인권과 같이 보편적 가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도 하지 않고, 국익이 무엇이고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지조차 묻지 않습니다. 나아가 국익이 국가기구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 아니“시민의 이익”이라고 말하는 데에 이토록 주저하는 이유는, 그렇습니다. 반공을 넘어 단 하루도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그들이 말하는 국익과 뜻이 다른 사람들을 ‘불온세력’,‘종북세력’,‘외부세력’으로 몰아세우는 편에 침묵합니다. 그러나,‘국익’과‘반공’은 복음의 언어가 아닙니다. 오히려‘국익 때문에’ 누가 희생당하고 있는지 보아주십시오. 그것이 사회를 복음화하는 단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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