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70호 2016년 2월 21일
가톨릭부산
영광스런 변모와 자비의 특별희년과의 연관관계 찾아보기

영광스런 변모와 자비의 특별희년과의 연관관계 찾아보기

조욱종 신부 / 로사리오의 집 loucho2@hanmail.net

  수난예고(루카 9, 22∼27) - 변모(9, 28∼36) - 수난예고(9, 43b∼45)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의도에서 루카 복음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고통과 죽음 뒤에 부활의 생명이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느님 자비의 마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자비의 특별희년”을 선포하는 칙서“자비의 얼굴”을 발표하며 이렇게 시작한다.“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이십니다.”(1장)
  예수님을 통한 아버지의 자비는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가가 자비가 하느님의 정의임을 드러내신 일에서 알 수 있다. 정의는 각자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준다는 뜻(20장)이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자비의 정의로 다가가야 한다. 자비는 정의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에게 다가가시는 하느님의 자세이므로 이를 뛰어넘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정의를 더 큰 차원 안에 두신다.(21장)   
  이 시대 자비의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 요즘의 자조 섞인 말인 흙수저, 금수저 그리고 헬조선 등이 이를 대변해주고 있다. 그것은 다른 말로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더 심각해지는 청년실업/날개 없이 추락하는 빈곤노후/점점 더 커지는 부자와 빈자의 양극화/이념이 갈라놓는 세대 간의 갈등...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하느님의 정의인 자비의 얼굴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자비의 특별희년의 주제는“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이”이다. 그에 대한 1차적인 실천으로는 회개의 순례, 주님을 위한 24시간, 용서의 대사 등이 있다. 또한 예수님처럼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면서 동시에 외롭지 않은 연대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실천도 필요하지 않을까? 가까이에는 우리 동네의 외롭고 가난한 독거노인들, 무관심으로 학대받는 아이들이 있고 바로 그 옆에 세월호와 정신대 할머니들, 가톨릭농민회 백남기 씨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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