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88호 2016년 6월 26일
가톨릭부산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지면, 펼쳐진 풍경도 달라진다.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지면, 펼쳐진 풍경도 달라진다.

이균태 신부 / 복산성당 주임 lee2kt@gmail.com

  구세주(그리스도)가 참 많다. 재물이, 권력이, 명예가 구세주인 경우도 있고, 남편, 아내, 애인 혹은 부모나 자녀가 구세주인 경우도 있다. 취미가 구세주요, 주(酒)님이, 심지어 자기 자신이 구세주인 경우도 있다. 그 가운데, 오직 예수만이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예수는 하느님의 그리스도”라는 신앙명제는 자신의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에 따라,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서 있는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그 의미와 내용이 달라진다.
  부활 전의 제자들에게 예수는 하느님의 그리스도였지만, 그들이 기다려 왔던 그리스도는 힘세고, 능력 있는 영광의 그리스도였을 뿐, 수난을 겪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할 굴욕의 그리스도는 아니었다. 결국 부활·승천-성령강림을 겪으면서야, 자신들이 서 있는 위치가 바뀌면서야 그들은 비로소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새롭게 발견했다.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지면, 펼쳐진 풍경도 달라진다고 했던가? 노동법 개정을 두고, 개선(改善)인가? 개악(改惡)인가? 참으로 말이 많다.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서 있는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개선이라고도, 개악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안이다. 영광의 그리스도가 아닌, 수난의 그리스도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시고, 그들을 편애(偏愛)하신 분이다. 그렇다면, 노동법 개정이라는 사안에 대한 그분의 입장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분을 십자가에 매달리신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 교회의 입장도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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