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2284호 2014년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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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李廷植, 요한 1794∼1868년)의 신앙과 순교

이정식(李廷植, 요한 1794∼1868년)의 신앙과 순교

 

한건 신부 / 순교성지사목 handom@naver.com

 

  이정식은 경상도 동래의 읍치에 위치한 동부 생민리(生民里)에서 살았다. 그는 무과에 급제한 후 동래의 장교로서 활 쏘는 선생이 되었다. 그는 59세 때 처가의 영향으로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입교한 이후에는 무관직을 사임하고 오로지 신앙생활과 전교에만 전념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누구보다 수계에 열심이었고, 화려한 의복을 피하고 항상 검소한 음식을 먹었으며, 애긍에 힘쓰면서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하였다고 한다. 1863년경 다블뤼 주교가 동래 교우촌을 방문할 때, 동래 교우촌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병인박해(1866년)가 일어나자 그는 가족들과 함께 기장과 경주로 피신하였다가 다시 울산 수박골로 피신하였다. 1868년 체포된 동래 교우들의 문초 과정에서, 이정식 가족이 피신한 수박골이 알려졌고, 포졸들이 찾아와서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동래로 압송된 이정식은 그곳에서 양재현을 만나 서로 위로하며 신앙을 굳게 지키자고 다짐하였다. 그는 동료들과 문초와 형벌을 받은 뒤 47일 동안 옥에 갇히는 고통을 겪었지만 결코 배교하지 않았다.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1868년 8월에 경상좌수영 장대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다. 당시 나이는 74세였다.

  그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거두어져 사형장 인근에 안장되었다가, 그의 생가 앞 고갯마루에 이장되었다. 이후에 명장동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으로 옮겨졌다가, 도시계획으로 인하여 수녀원이 철거되자, 1976년 부곡동 오륜대순교자성지로 옮겨졌다. 병인박해 순교자를 기록한 『치명일기』에 817번으로 기록되었지만, 아쉽게도 1899년 시복 청원 대상인 26위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고, 시복의 영광은 뒤로 미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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