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80호 2018년 3월 18일
가톨릭부산
한국전쟁과 피난교회 중심지 부산

한국전쟁과 피난교회 중심지 부산
 

한건 신부 / 순교성지사목 jubo@catb.kr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으로 인해 북한에 있던 성직자, 수도자들이 살해되거나 행방불명되면서 북한교회는 소멸되어 갔다. 남한도 부산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 교회가 큰 피해를 입었다. 전국의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부산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당시 서울교구 신부들은 중앙성당에, 전주교구 신부들은 부산진성당에, 북한에서 남하한 신부들은 1951년 5월에 신설된 초량본당의 메리놀회의 카놀 신부 사제관에서 신세를 졌다. 그리고 부산 시내 성당에는 피난 신자들로 가득 찼다.
  영원한 도움의 수도회,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한국 복자 수녀회 등 각 수도회들도 부산으로 피난 왔다. 부산으로 피난 온 수도회들은 이곳에서 의료 활동, 구제 활동 등 사회사업을 펼치면서 전교 활동을 했다. 이후 부산에 본원이 설치되거나 분원을 진출시키면서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
  또한 대신학교, 소신학교를 비롯해 동성중고등학교, 계성여자중고등학교, 수도여자고등학교가 부산으로 이전하였다. 이들 학교가 서울로 복귀한 후, 중등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특히 수도여자고등학교가 남긴 임시학교는 새 학교를 시작할 계기가 되었고, 데레사여자중고등학교의 시초가 되었다.
  부산에 온 피난민들은 전쟁으로 재산의 파괴와 참상, 가족의 이산과 생활의 어려움으로 생겼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종교를 찾았다. 더군다나 미국 등 외국 교회 단체의 구호물자는 이들에게 참다운 사랑의 손길이 되었고, 그것을 나누어주는 교회는 정신적인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우리 부산 지역의 교회는 피난민들에게 참다운 이웃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한처음 교구가 시작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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