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Jozeau, Moyse 1866-1894) 신부와 부산본당 설립
한건 신부 / 순교성지사목 jubo@catb.kr
1886년 조선과 프랑스가 수호통상조약을 맺고 이듬해 그 조약이 비준되고 선교사들이 상주함으로 우리 교회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습니다. 그때 로베르 신부는 경상도 지역과 충청도, 전라도 일부까지 넓은 지역을 혼자 담당하고 있었는데, 1889년 2월에 입국한 조조 신부는 3월에 로베르 신부의 신나무골로 부임했습니다.
조약 이후 경상도에 신자가 늘어나고, 부산은 외국과의 관문인 개항지로 발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예상한 블랑 주교는 1890년 초 조조 신부를 부산 첫 본당 신부로 임명하였습니다. 당시 경상도 남부 지역의 공소 25개 신자 수는 888명이었습니다. 조조 신부는 부산 시내에 성당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이때 절영도의 조내기 공소(현 청학성당 수녀원 자리)의 김보윤(로무알도) 회장을 비롯한 신자들이 조조 신부를 맞이하려고 했고, 신부도 이를 승낙하였습니다.
조조 신부는 섬이라는 조건 때문에 사목활동의 어려움을 느끼자, 곧바로 부산의 초량에 대지를 구입하였습니다. 이듬해 7월 부산으로 이주하여 곧바로 공사를 시행하려 했지만, 매매 등 여러 문제로 인해 1892년 봄 이후에야 성당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공사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후임 우도(Oudot) 신부에게 인계하고 전라도 배재 본당으로 전임되었습니다. 1894년 동학 농민 전쟁으로 본당이 많은 피해를 입었고, 조조 신부는 주교에게 도움을 청하러 상경하던 중 공주 금강 장기 나루터에서 청나라군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조조 신부는 타국 한국에서 자신이 원했던 전교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부산에서 3년의 사목활동으로 경상남도 복음화의 초석을 마련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