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82호 2016년 5월 15일
가톨릭부산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자란다. 敎學相長의 자리 : 교회와 세상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자란다. 敎學相長의 자리 : 교회와 세상

이균태 신부 / 복산성당 주임 lee2kt@gmail.com

  엄마가 이제 막 말문이 트인 아이에게 묻는다.“이제 이해되니?”“아니, 모르겠어.” 엄마는 눈높이를 아이에게 맞추고, 아이가 주로 쓰는 단어들로 설명한다.“이제 이해되니?”“아니, 아직.” 엄마는 또다시 손짓, 발짓을 다 동원해서 아이에게 설명한다.“이제 이해되니?”“엄마가 얘기하는 게 더 어려워.” 그래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는다. 마침내 아이의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 나온다 :“아, 이제 알았다! 엄마 고마워!”답답해 보이긴 하지만, 가르치고 배우며, 동시에 배우면서 가르치는 가운데 서로 자라나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세상에는 도대체 말귀를 못 알아듣는 이들이 있지만, 얼마나 끈질기게 가르치느냐에 따라서, 대부분 말귀가 열린다. 그런데 통교 속에서 일어나는 답답함의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알고 있는 것을 알아듣도록 설명하지 못하는 이에게 있는 것일까? 알아듣지 못하는 이에게 있는 것일까? 둘 다에게 있겠지만, 알고 있는 것을 알아듣도록 설명하지 못하는 이가 더 큰 책임이 있다. 그런데 우리 세상에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이가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처럼 여겨질 뿐만 아니라, 죄인 취급을 받기도 한다.
  알고 있는 것을 제대로 알려주기 위한‘하느님의 몸부림’(聖事)이셨던 예수님께서는 과외교사까지 붙여 주시면서(성령 파견), 참으로 敎學相長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성령 강림의 가장 큰 표징이 통교(通交)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 일어나는 통교의 기쁨이 한 가정 안에서만 머물지 않기를, 성령 강림이 2천 년 전 교회 안에서만 일어난 일회성 사건으로만 남지 않기를, 교회 안에서, 세상 안에서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나기를...... 그렇게 되려면, 먼저 책임을 더 많이 지고 있는 분들, 우리보다 윗자리에 계시는 분들이 포기하지 않고, 화내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끈질기게 우리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우리에게서도 배워야 할 것은 배우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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