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75호 2025년 6월 22일
가톨릭부산
“당신은 내 빵의 밀알입니다.”

강은희 헬레나
부산가톨릭신학원 교수

 
   오래 전 “에레스 뚜(Eres Tu)”라는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스페인어 원곡인 이 노래는 한때 한국 가톨릭 교회 생활성가에서 “주님의 기도”로 개사되어 청년 미사 등에서 자주 불려지기도 했기에, 지금도 미사 중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면 그 노래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 노래가 유행했던 당시는 자세한 관련 정보를 얻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던 때라 원 가사의 뜻도 잘 모른 채, 그저 스페인어의 어감이 멋있고 멜로디가 마냥 좋아서 흥얼거리기도 했었다. 수십년이 지난 최근 불현듯 다시 이 노래가 생각나서, 이번에는 인터넷의 힘을 빌어 원곡의 가사를 찾아 찬찬히 음미해 보았다.

   ‘너는 ... 과도 같아’ 라는 구절이 반복되면서, 그 한 구절 한 구절이 “너”라는 이 귀한 존재가 내 삶에 선사하는 소중한 의미를 지극히 소박한 언어로 잔잔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중 몇 구절을 뽑아 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너는 약속과도 같고, 여름날의 아침 같고 미소 같고 …
    내 손에 떨어지는 빗물 같고, 상쾌한 바람 같고 …
    한 편의 시와도 같고, 한 밤의 기타 소리 같고 …
    내 샘의 물 같고 내 화로의 불꽃이고 … ”

   그렇게 노래가 계속되다가 드디어 마지막 부분에 가면 다음의 가사가 나온다.

   “너는 내 빵의 밀알이야.”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때로는 빛나는 보석 같은 값비싼 물건에 견주기도 하고, 때로는 태양이나 별처럼 아예 현실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에 비기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이 노래에서처럼 우리가 당연시 누리는 일상 속의 평범한 것들로 그것을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그만큼 더 소중한 존재임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노래의 마지막은 그 일상의 정점이다.

   “너는 내 빵의 밀알이야.”

   우리가 매일같이 먹는 빵, 그 빵의 모양이 채 갖추어 지기도 전부터 내 몸으로 들어와 나의 생명이 되어줄 준비를 하고 있는 밀알. 그리고 기꺼이 자신의 모습을 지우면서까지 빵으로 만들어져 나의 양식이 되어주는 밀알.

   원곡의 창작자가 종교적인 의미를 의도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노래를 음미하면 할수록 이천 년 전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 가운데 살아가신 그분이 떠오른다. 간절한 목마름으로 하느님을 기다려 온 그분의 백성들에게 마르지 않는 생수, 생명의 빵을 남겨 주시고, 하느님께로 돌아가신 그 분. 노래가 끝난 후에도 그 아름다운 멜로디를 넘어서는 깊은 울림이 남는다.

   “당신은 내 빵의 밀알입니다.”


 

누룩

제2880호
2025년 7월 27일
가톨릭부산
제2878호
2025년 7월 13일
가톨릭부산
제2877호
2025년 7월 6일
가톨릭부산
제2876호
2025년 6월 29일
가톨릭부산
제2875호
2025년 6월 22일
가톨릭부산
제2874호
2025년 6월 15일
가톨릭부산
제2873호
2025년 6월 8일
가톨릭부산
제2872호
2025년 6월 1일
가톨릭부산
제2871호
1970년 1월 1일
가톨릭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