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0호 2018년 10월 14일
가톨릭부산
딸의 느린 엽서

딸의 느린 엽서
 

박주영 첼레스티노 / 남천성당, 언론인 park21@chosun.com
 

   고1인 제 딸이 며칠 전 엽서를 받았습니다. 제 아이가 지난해 10월 중순 부산진구 시민공원에 자율동아리 활동을 하러 갔다가 자신에게 써 보낸 편지였습니다. 그날은 아이 생일 전날이었습니다.
   엽서 앞면엔 시민공원 전경 사진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부산시민공원’, ‘느린 우체통, 1년 뒤 미래로 보내는 편지’ 등의 문구가 실려 있었습니다.
   ‘17살 여고생이 1년 전 16살의 자기 편지를 받으면 무슨 느낌이 들까?’ 궁금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얼굴 표정에 드러났는지 제가 전해준 엽서를 받아든 딸 아이는 “에이, 1년이 다 안 됐는데 왔네”라고 심드렁해 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곤 엽서를 흘깃 보더니 옆으로 툭 던졌습니다.
   이 대목에 궁금한 걸 물으면 ‘꼰대’로 찍힐 게 뻔해 목구멍까지 올라온 ‘질문의 욕구’를 꿀꺽 삼켰습니다. ‘살아갈 날이 가을 새털구름보다 더 많은 고딩이 무슨 큰 감흥이 있으랴’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1년 전, 10년 전 내가 지금의 내게 편지를 보냈다면 무슨 내용이었을까?’, ‘지금의 내가 1년 뒤, 10년 뒤 내게 편지를 쓴다면 무얼 적을까?’ 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1년 전’, ‘1년 후’는 시간입니다. 중년 고개를 넘고 있는 저와 ‘고딩’인 딸 아이에게 ‘시간’이란 단어가 갖는 혹은 주는 의미, 무게가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시간은 신비인 지도 모릅니다.
   성경 창세기는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이렇게 첫날이 밤, 낮 하루가 지났다”(1,1~5)는 문장들로 시작됩니다. 시간이 공간보다 뒤에 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가이아(땅), 우라노스(하늘)에 이어 크로노스(시간)가 등장합니다. 역시 시간이 땅, 하늘이란 공간보다 뒤입니다. 저는 이걸 사람의 인지, 인식에 공간 관념이 먼저 생기고 시간은 나중에 형성되는 걸 보여준다고 해석하곤 합니다. 시간은 사람이 삶을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거라는 얘기지요. 그런데 세월이 흐른다고 ‘시간의 신비’가 다 드러나는 건 아닙니다.
   성서엔 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당신 앞에서는 천 년도 하루와 같아 지나간 어제 같고 깨어 있는 밤과 같사오니”(시편 90,4),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2베드 3,8)
   지나친 욕심이겠지만 제 딸 아이가 ‘느린 엽서’를 통해 찰나라도 이런 ‘시간의 신비’를 느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물론 저 역시 ‘다 지나고 나서야 뭔가를 아는 어리석은 사람’이기에 ‘시간의 주인’께 기도합니다.
   가을은 그런 기도를 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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