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빕니다.
탁은수 베드로 / 광안성당, 언론인 fogtak@naver.com
나이 탓일까요? 잠이 줄었습니다. 늦잠을 자도 이른 새벽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집니다. 의학적으로는 나이 들면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의 분비가 줄어 잠도 줄어든다고 합니다. 아니, 내가 벌써! 노화의 신체변화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새벽기상에 익숙해지면서 좋은 점도 생겼습니다. 새벽시간 혼자서 즐기는 차 한 잔의 호젓함이란. 때론 편히 잠든 가족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가정의 소중함을 실감합니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맑은 공기를 관통하는 빗소리에 기분 좋게 마음을 뺏기기도 합니다. 새벽 미사를 볼 때도 있습니다. 가끔씩은 아내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며“영감님 다 됐냐?”며 타박을 해도 새벽 시간 만나게 된 평화로운 행복을 계속 즐길 생각입니다.
흔히 평화란 전쟁이나 폭력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평화는 그 이상의 의미입니다.“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평화는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선물은 하느님과 만나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노력을 통해 얻고 지켜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느낌, 그걸 세상의 무엇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 대상이 하느님이라면. 생명을 주시고, 죄를 용서하시고, 내 상처를 나보다 더 아파하시고, 세상 끝 날 뒤에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는 하느님과 이루는 사랑의 일치. 그 충만한 기쁨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평화가 아닐까요.
평화는 의식주가 채워졌다고, 또 잠시 혼자 세상 근심을 잊었다고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소유의 욕심은 결코 만족을 모르고, 세상 누구도 근원적으로 혼자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이성과 합리를 내세워 인류가 만든 제도, 사상 모두가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사회주의가 그랬고 자본주의도 그렇습니다. 과학의 발달, 집단지성의 결집이 때론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고 불평등을 크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평화는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품안에서 나온 선물이고 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온전히 주님을 믿고 따를 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봄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입니다. 넉넉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 만발한 꽃잎과 초록으로 영글어가는 새싹들. 겸손과 온유의 마음만 지닌다면 이 봄날의 선물 가운데에서 주님의 평화를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