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4호 2016년 8월 7일
가톨릭부산
나를 딛고 일어나라

나를 딛고 일어나라

윤철현 프란치스코 / 교구평협 부회장 goun7575@hanmail.net

  20여 년 전 어느 여름 날의 일이었습니다. 선배 의사 한 분의 강압에 의해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동의보감’의 무대인 밀양 산내면으로 현장답사를 나섰던 기억이 납니다. 스승 유의태가 제자 허준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 주어 인체해부를 실습하게 하였던‘얼음굴’이 발견되었다는 제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석골사’라는 절 뒤로 올라가다, 산길에서 약간 벗어난 산모퉁이를 돌아가니 어른 서너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생각만큼 굴의 규모가 크지도 않았고‘얼음굴’이라 불릴 만큼 서늘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과연 시신해부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심과 함께 소설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불현듯 마치 제가 허준이 되어 스승님의 시신을 해부하는 장면이 제 머릿속에 드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저는 스승님의 시신 앞에서 깨끗하게 몸을 씻고 스승님에게 큰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구슬땀을 흘리며 밤을 새워 스승님의 시신을 해부합니다.“나를 제물로 삼아 딛고 일어나 만백성을 병고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참의원의 길로 들어서라”는 스승님의 준엄한 명령이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그 순간 저에게는 이 동굴이 더 이상 역사적 현실이었던가 하는 의문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바로 그‘얼음굴’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한 개인의 성장은 알게 모르게 수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헌신이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마치 잘 이루어진 숲에서 각자의 생명체는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생명을 주기도 하고 또, 받기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 때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세상에 내어주실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당신을 세상에 내어주심으로써 만민의 평등과 창조주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피땀을 흘리시며 고통스럽게 기도하셨습니다. 그것은 십자가형의 극심한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토록 사랑하시는 제자들과의 이별, 그러나 한순간도 당신과 함께 깨어 있지 못하는 제자들에 대한 연민으로, 근심과 번민에 휩싸이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의 마지막 순간 그분께서는“다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이 세상을 떠나십니다. 그분의 십자가 희생으로 이 세상에 창조주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선포되었음을 묵상하면서“다 이루어졌다”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이 자애로운 스승님의 가르침이 되어 제 가슴 깊숙이 울려 퍼집니다.
 “프란치스코야, 나를 딛고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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