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의 추억
하창식 프란치스코 / 교구평협 회장 csha@pnu.edu
국제선 항공기를 타다 보면 참 재미난 현상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제 앞뒷자리는 물론이고 옆자리 승객도 같은 요금을 내고 타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적게는 몇십만 원에서 많게는 몇백만 원까지 차이가 납니다. 얼마나 일찍 항공권을 구입했는지, 어떤 경로의 항공 여정을 택하였는지 등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요금이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엔 이런저런 이유로 일정이 임박해서야 항공권을 구입하다 보니 비싸게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비행기를 탈 때마다 좀 억울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제 탓이니 어쩔 수 없지요. 저를 목적지에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제가 치른 값만 계속 생각하다 보면 하늘 여행이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을 테니까요.
주일미사에 참례하러 성당에 왔습니다. 아는 얼굴도 있지만, 모르는 얼굴이 더 많습니다. 신부님과 제대만 바라보며 참례하다가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에야 드디어 앞뒷자리, 옆자리 교우들은 물론이고 저 건너편 교우들과도 평화의 인사를 나눕니다. 아는 얼굴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인사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르는 교우일 경우엔 바로 옆자리 교우들이라도 건성으로 인사를 하게 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교우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누면서‘저 분들은 어떤 연유로 세례를 받게 되었을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마다 다른 세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태중 교우들도 있을 테고, 이웃의 권면으로 세례를 받게 된 분들도 있을 것이며, 스스로 성당에 찾아와서 세례를 받게 된 분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경위야 어쨌든, 우리가 하느님을 찾기 전에 하느님이 먼저 우리를 부르고 계셨을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일 것입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묵시 3, 20) 저마다 하느님을 만난 경로가 달라도 하늘로 가는 기차 삯에는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주님께서 몸소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을 묵상하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빈부의 차이, 직업의 귀천, 나이나 성별 등 그 누구도 소외됨 없이 하느님의 집에 든 우리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실 주님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면서, 제 주위 교우분들 모두가 그런 주님만을 바라보며 하늘나라로 신나게 함께 달려가는 여행을 기원하며 화살기도를 바쳐 봅니다. 그러면 제가 모르고 있던 교우들에게 인사할 때에도 제 입가에 저절로 번지는 미소를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