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87호 2011년 1월 16일
가톨릭부산
작심삼일에 대하여

작심삼일에 대하여

탁은수 베드로

새해 선배가 보내준 시 한 편이 마음에 남아있다. “황새는 날아서/말은 뛰어서/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새해 첫 기적-반칠환) 아차 싶었다. 인맥 관리니 정보 교환이니 하면서 이 자리, 저 자리 찾아다닌 게 사실은 진짜 ‘나’를 찾지 못한 불안 때문은 아니었을까. 바쁜 중년 남자들이 혼자 있을 때는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밥 먹고 여행가는 것도 혼자서는 어색해하는 경우가 많단다. 경쟁 속에 살다보니 뒤처지지는 않았는지, 남과 나를 비교하는 건 익숙하지만 나만의 가치를 찾는 건 어려워하거나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달팽이는 날지 못하고 굼벵이는 뛰지 못해도 자신만의 가치가 있듯이 나도 ‘나만의 가치’가 있을 텐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흔히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재촉할 수도 없다. 세상의 존재는 아무리 빨리 날고 달려도 시간을 앞지를 수 없다. 또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도 시간을 더 가질 수는 없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시간 속에 내 뜻과는 상관없이 던져진 존재일 뿐이다. 백년을 살 것처럼 욕심 부려도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시간을 넘어설 수 없는 게 인간의 한계이듯 인간의 인식은 눈에 보이는 것조차 다 설명할 수 없다. 

일상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있다. 내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 할 불행이 몰려오기도 한다. 사람의 눈으로만 본다면 이 세상에는 이해하지 못할 일도, 설명하지 못 할 고통도 많다. 만남도 그렇다. 늘 가까이 있는 사람, 영원히 멀어진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느니 못 했던 사람, 그 만남들이 모두 내 의지로 이뤄진 것일까. 그 동안의 인연들에 대해 난 얼마나 무기력했던가. 

새해가 되면 멋진 계획들을 세우지만 작심삼일인 경우도 많다. 굳게 먹은 마음이 얼마 안 가 흔들릴 만큼 우리는 나약하다. 어쩌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이 나의 존재 가치를 알아 가는 시작인지도 모른다. 불완전하고 부족한 내가 나의 가치를 찾으려면 내 생각보다는 절대자의 뜻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것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새해 내 계획은 욕심을 줄이고 하느님 보시기에 좋도록 사는 것이다. 하지만 난 얼마나 이기적이고 약삭빠른 사람이던가. 언제, 어디서 하느님을 모른 체 할지 모른다. 그래도 올해 계획만큼은 작심삼일이 안 되기를 기도한다.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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