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82호 2025년 8월 10일
가톨릭부산
넘어진 자리에서 시작된 기도
넘어진 자리에서 시작된 기도

 
조규옥 데레사
우동성당·시인


   단체 모임이 있는 날, 2025년의 일정을 세우고 한 해의 계획을 나누는 뜻깊은 자리였다. 휴대전화를 꺼내 각자의 달력에 붉은 글과 파란 줄을 그어가며 우리 모두 이번 문학기행을 함께하자고 약속했다. 즐겁고 보람된 한 해를 만들자고 마음을 모은 날이었다.

   그러나 막상 떠나는 날이 되자 몇몇 분에게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갑작스레 몸이 아프신 분, 손녀를 돌봐야 해 집을 나설 수 없다는 분, 가족의 병환으로 집을 비울 수 없다는 분 그리고 마음이 편치 않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분도 있었다.

   우리에게는 늘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요즘 들어 그 빈도와 깊이가 더 자주, 더 크게 다가오는 듯하다. 2020년 코로나19를 겪으면서부터 세상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뼈저리게 배웠다.

   나에게도 경험한 것 중 잊혀지지 않는 예기치 않은 일들 중 두 가지를 만나본다.

   첫번째는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던 어느 날의 기억이다. 성당에서 새벽 미사 복사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의 무릎엔 말라붙은 피가 남아 있었다.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파트에서 성당으로 내려가는 길에 넘어졌다는 것이다 너무 아파서 일어설 수조차 없었는데 그 순간, 하느님께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다. “하느님, 저 복사하러 가야 해요. 일어나게 해주세요.” 했더니 믿기지 않게도 벌떡 일어나 다시 걸을 수 있었다고 했다.

   두번째는 내 신앙의 여정에서 마주한 일들이다. 고향을 떠나 먼 부산으로 시집오던 날부터 나의 삶은 늘 낯섦과 마주해야 했다. 정이 들만하면 이사를 했고 새로운 본당에 적응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사람들과 정을 나누기도, 받기도 어려워졌고 늘 전학 온 학생 같았다. 기도는 점점 외롭고 낯선 것이 되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기도를 하러 더 멀리 가는 버릇이 생겼다. 마음 둘 곳이 없으니 기도조차 떠돌게 된 걸까?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아시는 하느님은 오고 가는 먼 길도 안전한 삶을 살도록 지켜주시는 것 같았다.

   이렇듯 예기치 않은 일들은 늘 우리 삶 주변을 맴돌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이제 조금 건강하다고 느껴질 때 요즘 생활이 편안하다고 생각될 때 기도 생활을 준비한다. 본당 미사 전례를 따라 성가대의 찬송이 익숙해지고 내가 앉는 자리가 무언중에 정해진 듯 나의 기도가 깊어질 무렵에 신부님의 강론 중 ‘성경은 지혜문학이다.’라는 말씀이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다. 오늘도 예기치 않은 일을 준비하기 위해 성경 속에서 삶의 지혜를 준비한다.

누룩

제2890호
2025년 9월 28일
가톨릭부산
제2889호
2025년 9월 21일
가톨릭부산
제2888호
2025년 9월 14일
가톨릭부산
제2886호
2025년 8월 31일
가톨릭부산
제2885호
2025년 8월 24일
가톨릭부산
제2884호
2025년 8월 17일
가톨릭부산
제2883호
2025년 8월 15일
가톨릭부산
제2882호
2025년 8월 10일
가톨릭부산
제2881호
2025년 8월 3일
가톨릭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