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51호 2025년 1월 12일
가톨릭부산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박갑조 세례자 요한 신부
맑은하늘 피정의집 관장


 
   사람은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마음 없이는 사랑도 미움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언제나 무엇이든 자기 소유로 삼는 성질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왜 요한은 “자격”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고민해 보기에 앞서 오늘 복음에서 자격이 있고 없음에 연연하지 않는 요한의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바로 요한은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나타나 예수님 위에만 내리셔도, 하늘에서 예수님만을 향해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라는 말씀이 들려와도 아무렇지 않은 것입니다.  
 
   사전적 의미로 자격은 어떤 역할이나 행동을 하는데 필요한 근간 또는 경력을 말합니다. 요한은 하느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고 말하는데, 그러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성령과 불의 세례를 받기에 합당한 자격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만든 자격으로 사람 사이에서 차별을 두며 자신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안위만을 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인위적인 자격으로 인하여 어떠한 장애를 겪지 않습니다. 마치 계절이 그렇고 나이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그러면 마치 물속에서 곧장 올라와 물기를 채 털어내지 못한 예수님의 모습, 곧 갓난아이의 모습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능력도 삶의 고해(苦海) 앞에서는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자신만의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의식은 참으로 위험천만하며 극단으로 치닫을 수 있는 이기심의 발로라 생각됩니다. 신앙심은 저울로 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믿음이 깊고 얕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어떤 자격을 갖기 전의 갓난아이의 상태가 하느님 사랑이 온전히 드러나는 현장이라고 봅니다. 굳이 하느님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는 종교심은 사람의 결핍을 도무지 용납하지 않습니다. 늙고 병들 처지에 닿게 되면 누구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 시간, 그 자리가 바로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곳이며, 그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불과 세례의 오묘한 손길은 무언가를 깨닫게도, 느끼게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갓난아이가 무엇을 해서 어머니의 마음이 기쁜 게 아닙니다. 갓난아이 자체로 어머니의 마음은 기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에 대한 우리의 잣대를 줄여가야 할 필요성을 자각하는 일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삶이요, 차별의 앎을 여의는 신앙생활이 마음의 세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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