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94호 2024년 1월 14일
가톨릭부산
“와서 보아라.”

“와서 보아라.”
 

 

우종선 신부

남창성당 주임
 

   세례자 요한은 이미 자신을 소개하면서 예수님에 대하여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보다 앞서신 분, 하느님의 어린양, 하느님의 아드님’(요한 1,29-34 참조)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드디어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의 신앙, 예수님께 대한 믿음에 대하여 올바른 길을 제시해 줍니다. 먼저 세례자 요한의 모습에서 본보기를 찾아보고, 예수님의 초대에서 올바른 신앙생활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요한은 어머니 엘리사벳의 뱃속에서부터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그 이후로도 철저히 ‘예수님 중심’의 삶이었습니다. 훌륭한 선지자, 예언자로서 덕망 있는 삶을 살았기에 많은 이들이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자신의 세력(?)을 키울 법도 한데, 요한은 전혀 그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인도합니다. 신앙은 ‘우리의 구세주, 메시아로 오신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만 만족하면, ‘나’를 따르는 사람이 많이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생각은 옳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신앙을 나의 인간관계의 ‘도구’로만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족과 친분있는 사람들(대부모, 대자녀...)을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자신도 그런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의 증언에 그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며 묻습니다.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이에 예수님은 “와서 보아라.”하고 그들을 초대하십니다. 단순한 초대가 아닌 것입니다. 궁금해하지만 말고, 나의 삶으로 들어오라는 강렬한 초대인 것입니다. “나와 함께 먹고 대화하고 지내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평생을 함께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물’을 평가 할 때, 양말과 신발을 신고 살짝 접하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온몸을 그 ‘물’에 담궈봐야 알 수가 있듯이 우리의 신앙도 그러합니다. 세례만 받고 미사와 특강을 수없이 보고 듣고 궁금증만 늘려 갈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삶을 완전히 접고 예수님께 자신을 맡겨 봐야, 신앙의 참맛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자비와 선행을 베풀어 봐야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듯이 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새로운 한 해의 시작점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 ‘예수님과 함께’하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통해 참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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