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8호 2026년 9월 27일
가톨릭부산
포도밭으로 향하는 믿음


원형준 베드로 신부

서면성당 주임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를 만들어 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르트르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보다 실제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있습니다. 나의 생각과 의도를 아무리 말해도 결국 내가 선택하고 행동한 것이 나를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두 아들도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부름에 첫째 아들은 “싫습니다.”라고 대답하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포도밭으로 갑니다. 둘째 아들은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지만 정작 가지 않습니다. 이 둘 가운데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사람은 나중에 마음을 돌려 포도밭으로 간 첫째 아들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말이나 생각에 머물기 쉽습니다. 미사 때마다 “아멘”이라고 대답하면서 용서하고 사랑하며 가진 것을 나누겠다고 다짐하지만, 삶으로 이어지지 않아 여전히 둘째 아들에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이와 달리 지금까지 부족했더라도 삶의 방향을 바꾸어 하느님께로 향한다면 첫째 아들처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사르트르와 복음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사르트르에게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으로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존재인 반면, 복음에서 인간은 혼자 힘으로 자신을 완성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에는 아버지의 부름이 전제됩니다. “얘야,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며 실천입니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좋은 의도와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실제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했는가가 그 사람을 드러냅니다. 사람을 대하거나 조직을 운영할 때, 지도자가 선한 의도를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선향 영향력이 발현되지 않습니다. 저마다 “아멘”이라는 응답과 더불어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살아있는 신앙을 살아내야 합니다.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을 맞은 오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당신의 포도밭으로 부르십니다. 포도밭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 곁에서 살아가는 이주 노동자일 수도 있고,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자라고 있는 이주민 가정의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편견을 버리고, 친절하게 먼저 인사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려움이 있다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때로는 부족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생각을 바꾸고 일어나 아버지의 포도밭으로 향하는 믿음을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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