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성 비오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오늘 복음은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 때 일어난 일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시간상으로 따져본다면 주간 첫날 새벽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드로, 요한이 빈 무덤을 발견했고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직접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아직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시간상으로 따져보면 문을 닫아걸고 있는 제자들의 심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쳤던 자신들의 비겁함이나 수치스러움과 예수님을 죽인 유다인들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 엄청난 일을 해소해 낼 수 있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몇 제자들이 아침에 전해주었던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믿지 못할 만큼 그들의 마음은 굳게 닫혀 있는 문처럼 열리기 힘들어 보입니다.
이 장면으로부터 묵상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덕분에 우리의 잘못이 드러났다면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 덕분에 우리의 닫힌 문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향해 닫힌 문, 혹은 무언가를 향해 닫힌 문. 무섭고 두려워서 혹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우리 스스로 닫아버린 문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문을 부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직접 열어야 한다는 듯 닫힌 문 안쪽 한가운데에서 평화가 이미 주어졌다고 선언하십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언젠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평화를 원하는 사람에게만 남아 있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이에게서는 거두어질 평화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평화 안에서 닫힌 문을 바라보고 문을 열어젖히겠지만 누군가는 그 닫힌 문 안에서 거짓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함께 있지 못해 아직 평화를 얻지 못한 토마스를 봅니다. 닫혀 있는 문 안에서 겁을 집어먹고 있던 그는 잔인한 말도 서슴지 않고 합니다. 닫힌 문 안에 숨어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더 불안해지고 두려움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을 학대하거나 누군가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것뿐입니다.
당신을 가두었던 무덤은 이제 열렸고 우리 자신을 가두었던 무덤, 곧 닫혀 있는 문 안으로 예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무덤에 갇혀 시체처럼 썩어갈 뻔했던 우리를 살려 평화와 성령과 용서를 넘겨주십니다. 우리는 닫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찾아오십니다. 자비로움으로 그곳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날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