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9호 2025년 11월 23일
가톨릭부산
모순과 역설의 기로에서

 
김지황 바오로 신부
영주성당 주임

 
   오늘은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십자가에는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명패가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인의 왕이 아니라, 온 누리의 임금이심을 선포합니다.

   왕이 반란이나 내란같은 용서받을 수 없는 대역죄인이 받을 십자가형에 처해지다니요? 옷 벗김 당하고 처참한 몰골로 매달린 그분을, 어느 누가 왕이라고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예수님의 모습이 불편한 적은 없으신지요. 그런 모습으로 세상과 이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발걸음은 주님의 집으로 향해야 합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20)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높은 지위, 권력과 부를 인생의 목표로 지향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4세, 7세 고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사랑, 행복, 나눔, 봉사, 배려같은 가치는 책에나 나오는 남의 얘기인 듯 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같은 분이셨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당신의 것을 모두 버리시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 평범하고 소박한 나자렛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하루하루가 고단한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도, 토마스도, 마태오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받은 유혹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매순간 흔들리고 넘어가기 쉬우면서도 결코 포기하기 힘든 것들이었습니다. 고통과 모욕과 죽음 또한 참고 인내하기 어려운,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이겨내셨습니다. 스스로 높은 지위와 권력과 부를 포기한 임금, 인간의 눈에는 가장 힘없고 무능한 임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손해 보고, 하기 싫고, 이득이 없으면 다 모순이고,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복음 때문에 자신을 낮추고 억울하게 미움받고 모함받은 경험은 오히려 나를 주님께 더 가까이 인도하는 역설의 신비를 이루어줍니다. 그 끝은 기쁨과 행복일 것입니다.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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