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5호 2016년 10월 23일
가톨릭부산
우리 삶의 징조

우리 삶의 징조

우리농 본부(051-464-8495) / woori-pusan@hanmail.net

  이레네오 성인의 말씀처럼 참으로“사람이 하느님을 알게 되는 첫걸음은 자연을 응시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골방에 갇힌 메마른 사색은 창조주 하느님의 신비로 가득 찬 자연 속으로 자리를 옮기고서야 비로소 그 혈관에 생명의 피가 돌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거친 사막도 모든 생태적 그물망에서 떨어져 간 콘크리트 문명보다 더 풍요롭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지내실 때도 군중 속의 고독을 우려하는 우리와는 달리 들짐승과 천사들의 무리와 함께하셨다는 말씀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마르 1, 12∼13 참조)
  시대가 거칩니다. 손만 대도 선을 긋고 살을 가르며 침입해 들어오는 날이 선 칼날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타인의 죽음을 담보로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기를 주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식을 팔아서라도 오늘을 살찌우기를 중단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문명은 쉼 없이 생태적 종말로 치닫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물론 그 종말이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종말의 예고는 먼저 인간을 제외한 피조물에게, 그리고 나보다 더 약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도달합니다. 어쩌면 그 덕에 그나마 간신히 살아가는 나의 주춧돌인 가난한 피조물과 이웃이 살육된 뒤 나의 종말을 깨닫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농민이 돌아가셨습니다. 백남기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작년 11월 14일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317일을 버티다 올해 9월 25일 하느님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그는 땅을 파며 하늘을 닮기를 간절히 원한 농부였습니다. 땅과 하늘에 기대 일생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묻는 것인지도 모릅니다.“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올해 쌀값은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며 폭락했습니다. 땅과 하늘의 징조, 농부의 징조는 곧 닥칠 우리 삶의 징조입니다.

환경과 생명

제2242호
2013년 11월 3일
가톨릭부산
제2240호
2013년 10월 20일
가톨릭부산
제2238호
2013년 10월 6일
가톨릭부산
제2236호
2013년 9월 22일
가톨릭부산
제2233호
2013년 9월 8일
가톨릭부산
제2231호
2013년 8월 25일
가톨릭부산
제2228호
2013년 8월 11일
가톨릭부산
제2226호
2013년 7월 28일
가톨릭부산
제2224호
2013년 7월 14일
가톨릭부산
제2222호
2013년 6월 30일
가톨릭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