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3호 2018년 6월 17일
가톨릭부산
아들과 관계가 점점 힘이 들더니 이젠 아예 틀어졌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그 녀석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들과 관계가 점점 힘이 들더니 이젠 아예 틀어졌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그 녀석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홍경완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jubo@catb.kr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해한다는 사고작용이 원래 그렇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해는 앞선 이해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사람이나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을 두고 이해한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해지려면 그 사람과 사건을 내게 익숙한 세계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이미 이해가 이루어진 앞뒤 맥락 속에 위치시켜 놓아야 합니다. 이해는 이렇듯 복잡한 사고과정을 수행하는 인간이성의 주된 작업입니다. 
  그런데 이해를 떠받치는 이 세계가 문제입니다. 내가 나만의 고유한 세계 안에서 사람과 사건을 해석하듯, 그 역시 그만의 고유한 세계 안에서 사람과 사건을 보면서 이해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가 내 자녀여도 매한가지입니다. 내 생각과 경험, 환경 속에서 내가 ‘이해와 오해’를 하는 것처럼, 아들 역시 그만의 고유한 생각과 경험, 환경 속에서 ‘이해와 오해’를 합니다. 이해의 배경이 이렇게 다르기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해하기 위해선 이 배경들의 공유가 많아져야 하는데, 생각, 경험, 환경을 함께 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기적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 하나. 가족은 이해가 아니라 인정으로 접근하는 대상입니다. 사랑 또한 이해가 아니라 인정과 같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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