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37호 2026년 7월 26일
가톨릭부산
사별의 자리에서 피어난 은총의 꽃


김부재 임마누엘

동대신성당 · 교구 노인대학연합회장


   가을의 문턱이었던 2016년 9월, 제 삶의 가장 커다란 기둥이었던 아내가 주님 품으로 먼저 떠났습니다. 선종 전 마지막 1년은 가혹한 암 투병의 시간이었습니다. 육신의 고통이 깊어 가던 그 절박한 문턱에서, 아내는 저에게 평생을 미뤄둔 가장 소중한 약속을 청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 제대 앞에서 눈물로 혼배성사를 올렸습니다. 그것은 아내가 지상에서 제게 남겨 준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마지막 선물이었습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이별을 겪은 뒤, 제가 걸어간 곳은 아내가 평생 저를 위해 기도의 촛불을 밝혀두었던 성당이었습니다. 아내가 남겨둔 신앙의 밀알을 가슴에 품고, 주임 신부님의 권유로 한 달 뒤인 10월에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신앙생활이었지만, 매일의 기도와 미사는 제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버팀목이자 은총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신앙 여정이 어느덧 세월이 흘러 현재는 노인대학연합회 회장으로 봉사하며 삶의 가장 보람찬 황혼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홀로 남겨진 깊은 외로움 속에서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것은 혼배성사 때 아내가 제 손에 쥐여주고 간 신앙의 유산이었습니다. 아내가 쓰던 묵주를 쥐고 성경을 읽으며 비로소 마음의 참된 평화를 배웠고, 늦깎이 신앙인으로서 얻은 위로를 이웃과 나눌 수 있는 혜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일흔넷의 나이에 영혼의 평화를 누리며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밤하늘의 별처럼 저를 내려다보며 언제나 함께 기도해 줄 아내가 하늘 나라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병상 위에서 맺었던 그날의 혼배 서약은 이제 하늘과 땅을 잇는 영적인 교감으로 마침내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제정하신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입니다. 노년의 시간은 단순히 육신이 쇠퇴하는 시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삶의 깊은 지혜와 영적 유산을 마음에 벼리고, 이를 후대에 전하며 세상에 따뜻한 빛을 비추는 가장 성숙한 신앙의 계절입니다. 우리 시니어 신자들이 이러한 자부심과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고 기쁘게 살아가기를 늘 기도합니다.


   이번 조부모와 노인의 날에는 미사 중에 아내의 영혼을 위해 더욱 간절히 기도하려 합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고요히 속삭여봅니다. “암 투병의 고통 속에서도 나에게 혼배성사와 신앙을 선물해 준 당신, 그 사랑의 밀알 덕분에 내 신앙이 흐려지지 않고 더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언제나 영원한 기도로 저를 지켜주는 아내의 영혼에 주님의 안식을 청하며, 우리 노인대학 구성원인 학생과 교사, 봉사자들, 그리고 모든 신앙 가족의 황혼길 위에 주님의 따뜻한 위로와 성령의 축복이 늘 함께하시기를 청합니다.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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