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26호 2022년 10월 9일
가톨릭부산
아름다우신 성모님

아름다우신 성모님
 
 

강은희 헬레나 / 부산가톨릭신학원 교수

 
 

      지인이 10월에 집들이를 한다기에 마침 로사리오의 성월이기도 하고 해서 성모상을 모셔다 줄 생각으로 성물점을 찾았다. 다양한 크기별 각양각색의 성모상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성모상들은 한결같이 아름다웠지만, 저마다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 나는 찬찬히 들여다보며 어떤 성모상을 선물하면 좋을까 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나는 어느 성모상이 제일 예쁜가 하며, 예쁜 성모님을 찾고 있었다. 심지어 이 성모상이 더 예쁘다 저 성모상이 더 예쁘다 속으로 품평회까지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순간 아차 싶었다.
 

   우리가 성모님을 찾는 것은 그분의 미모 때문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성모님을 왜 찾고 있는 것일까? 이천 년 전 그 시절 성모님은 어떤 모습이셨을까? 흰 피부에 섬섬옥수를 늘어뜨리고 실크 옷자락을 나부끼는 그런 모습은 분명코 아니었을 것이다. 기실 고대 여성들의 노화는 매우 빨랐다고 한다. 오늘날처럼 미백, 탄력 크림으로 피부를 가꿀 수도 없었고, 믹서기, 청소기, 세탁기의 혜택도 없이 땡볕 아래 모든 것을 손일로 감당해야 했을 터. 만일 우리가 그 시절로 돌아가 실제로 성모님을 마주치게 된다 해도, 우리는 그분을 빨랫감을 이고 가거나 맷돌을 돌리며 다음 끼니 반죽을 하는 여느 여인들 사이로 그냥 지나쳐버렸을 것이다.
 

   이처럼 지극히 평범했을, 아니, 자식도 일찍 잃은, 고대 사회의 기준으로서는 여인 중 가장 비참하다 여길 이 여인을, 성교회는 여인 중 가장 복되다 칭송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진리를 품었고, 그 진리의 선포자를 세상에 내어 주었으며, 진리의 증언으로 수난하고 처형된 아들의 목격 증인이자 제자로서 살아가셨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외아들을 떠나 보낸 후에는 그 제자들의 어머니가 되어 주셨으며, 그로써 우리들의 어머니도 되셨다. 이러한 성모님의 모습을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자면, 아마도 진리 수호를 위하여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양심수들의 어머니들이 가장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예쁜’ 성모님을 원한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것은 감각적 존재로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름다움으로 환기된 우리들의 시선이, 감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모든 진리와 선함과 아름다움 너머에 있는 근원적 거룩하심으로 향하게 하는 소박한 동기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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