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89호 2022년 1월 23일
가톨릭_부산
영적인 아스피린
영적인 아스피린

 
 
윤경일 아오스딩 / 좌동성당 의료인
ykikhk@hanmail.net

 
  하느님은 사랑이신데 왜 우리에게 고통을 요구하실까? 때로는 고통을 넘어 완전한 버림받음까지 원하실까? 살다 보면 누구나 큰 상실의 고통을 겪는다. 한 여성이 진료실에 찾아와 “선생님, 제가 너무나 고통스러워요. 가슴이 찢어지고 미어져서 한순간도 견딜 수가 없어요. 마음을 다스리는 아스피린 좀 주세요.”라고 말했다. 사연인즉, 고속도로상에서 빗길에 미끄러져 사고를 당한 운전자를 발견한 그녀의 남편이 차를 세우고 부상자를 돕다가 또다른 차량이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남편이 이차 사고사를 당한 것이었다.
 
   이 충격적인 고통을 다스려줄 정신적 진통제라. 아스피린과 같은 약이 신체 증상은 완화시켜 줄 수 있지만 어떻게 정신적 고통까지 없애 줄 수 있겠는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항우울제 처방을 생각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엄청난 고통은 약 처방만으로 해결될 일이 결코 아니었다. 깊고 깊은 마음 앓이의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녀가 울부짖고 통곡하는 대로 받아주기만 했다.
 
   한 화가는, 아침에 출근할 때 다정하게 인사하던 딸이 오후에 갑자기 사고로 하늘나라로 갔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다. 이보다 더 큰 충격이 또 있을까? 애써 키운 자식을 한순간에 잃어버리면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일 것이다. 성실히 신앙생활을 해 오던 사람도 이런 허망한 일을 당하면 하느님을 원망하고 성당에 나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실에는 차갑고 쓰디쓴 고통만 따를까...
 
   그런 현실이 너무도 싫어 그 화가는 멀리 떠나갔다. 자식에 대한 죄책감을 씻어보고자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신발이 누더기가 될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긴 시간 방황 끝에 마음을 붙잡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빛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영혼의 허물을 하나씩 둘씩 걷어내면서 묵상 속에 비친 산티아고의 모습을 여러 형상의 작품으로 담아내었다. 
 
   자식을 잃은 상황은 변한 게 없고 고통스런 기억이 완전히 지워진 것도 아니지만 화가는 차츰 하느님 안에서 평화를 얻으며 자기 자신 너머를 바라보고, 또 주어진 삶 자체를 받아들이고 사랑함으로써 상처를 치유해 나갔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주신 영적 의미를 깨닫게 되니 자식을 잃은 크나큰 고통은 줄어들 수 있었고 그의 그림은 창의성으로 빛났다. 
 
   삶에서 찾아오는 예기치 못한 고통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버리고자 함이 아니라 이기적인 마음을 정결케 하여 진정한 사랑의 길로 들어서게 하기 위함임을 믿는다.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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