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13호 2020년 9월 6일
가톨릭부산
40년 묵은 도시락
40년 묵은 도시락

 
박선정 헬레나 / 남천성당, 인문학당 달리 소장

 
   얼마 전 내가 자란 시골집으로 가는 길에 주유소를 들렀다. 건너편에 차 한 대가 서고는 차에서 내린 남자가 주유를 하는 내내 힐끔힐끔 나를 쳐다본다. ‘참 내.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얼른 주유를 마치고 자리를 뜨려는데, 그 남자가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어쭈? 
 
   “니, 혹시 선저이 아이가? 내, 국민학교 때 종아다. 모르겠나?” 어, 그러고 보니 낯이 익다. 전교생이라야 얼마 안 되는 시골학교인데다 6년을 한 학교에서 다녔으니 다 안다. “아이구야, 니 종아 맞네.” 그렇게 우리는 거의 40여 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반가워했다. “점심 묵었나? 내가 점심 사꾸마.” “아냐. 가야돼. 다음에...” “내가 니 만나면 꼭 밥을 살라꼬 40년을 기도했는데.” 엥? 40년을 나한테 밥 살라꼬 기도했다꼬? 
 
   어릴 적 점심 도시락을 못 싸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나마 나는 꽁보리밥일망정 도시락은 꼭꼭 싸갔지만, 그 친구는 종종 빈 도시락만 들고 학교에 왔다. 겨울이 되면 교실 한가운데 난로는 타닥타닥 소리를 내고, 그 난로 위에 쌓아 올린 양은 도시락들이 얌전히 데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심심찮게 사건이 터졌다. 누군가가 남의 도시락을 먹어버리는 것이다. 누구냐고 아무리 난리를 쳐도 제대로 범인을 잡아내는 건 못 봤다. 그러니 어쩌겠나. 화장실도 참은 채 도시락을 사수할 수밖에.
 
   그 시절 이 친구가 내 도시락을 먹은 적이 있단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그 친구 말이, 그날따라 내 도시락에 계란후라이가 얹어져 있었는데 그리 맛있더란다. 그런데 빈 도시락을 발견한 내가 서럽게도 펑펑 소리 내서 울더란다. “나도 계란후라이 얹은 도시락 처음 먹어 보는 건데.”라면서 말이다. 그 친구는 순간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너무너무 미안했단다. 
 
   이후,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야채 장사를 하면서 조금 형편이 나아졌다. 그렇게 번 돈으로 처음 한 일이 고아원에 매달 쌀을 보내는 일이었단다. 그렇게나마 미안함을 달랜 거다. 그런데도 계란후라이만 보면 나의 울음소리가 늘 마음에 걸리더란다. 그러니 꼭 한 번만 내게 밥 사줄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단다. 그러다 나를 만났으니, 하느님께서 40년 묵은 그 미안함을 용서받을 기회를 주신 거다. 그렇게 나는 친구가 사주는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계란후라이도 두 개. 배 두드리고 나오는데 그 친구 손가락의 묵주반지 속 아부지가 활짝 웃으시더라.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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