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58호 2019년 9월 1일
가톨릭부산
선물

선물
 

김홍석 요나 신부 / 히로시마교구 파견
 

   오카야마의 자그마한 시골마을 츠야마라는 곳에 부임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뿌린만큼 거두지 못하는 일본이라는 선교지에 실망하여 제대 뒤의 십자가를 노려보고 있을 때 성당 맨 뒤에 앉아만 계시던 아오타 할아버지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눌했지만 그것은 한국말이었다.

   “신부님! 놀라셨죠? 저는 아오타 히데오라고 불리지만 강동수라는 한국 이름이 있습니다. 올해 85세이고 일본에서 70년을 살았습니다. 제가 귀화하지 않은 이유는 죽어서 꼭 한국에 묻혀야 하기 때문이고, 천주교 신자가 되려는 이유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묻힌 천주교 묘지, 콕 찝어서 양산에 있는 하늘공원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부님. 저에게 세례를 주실 수 있으십니까?”

   한국전쟁 당시 이북에서 부산으로 피난 내려와 전쟁이 없는 나라를 찾아 일본으로 밀항하여 갖은 고생을 겪었기에 자신을 지켜줄 분, 하느님을 찾게 되었고 개신교 신자가 되었지만 거기서 만족을 하지 못하시고 결국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셨다던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요! 마침 저는 부산교구 신부이구요, 하늘공원도 부산교구 묘지랍니다. 형제님의 소원이 이루어질 거에요!” 그렇게 8개월 가까이 예비자 교리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스펀지처럼 교리를 빨아들이던 할아버지는 그해 성탄, 크리스토폴이라는 이름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런데 세례를 받은 그 다음주부터 강동수 할아버지가 성당에 나오지 못하게 되셨다. 한쪽 어깨가 아파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기에 노화현상이려니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들려온 소문은 그것이 아니었다. 병자성사 준비를 해서 병원으로 찾아갔다.
   “신부님, 사실은 성탄 며칠 전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너무 아팠어요. 그런데 그렇게 평생을 기다려온 세례식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참고 또 참았어요. 가족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이 고통이 제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했어요.”

   깊은 한숨. 그리고 입 밖으로 나온 탄식, 그 긴 시간을 하느님을 찾아 먼 길을 찾아온 인내심 많은 한 마리 양을 위해 당신은 저를 이렇게 멀리도 보내셨군요. 그리고 그 양과 목자가 이렇게 만났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 역시 어딘가에 숨어 있을 한 마리 양을 찾아 더 열심히 먼 길을 떠나겠습니다.’

   아기처럼 눈을 감고 성체를 영하던 크리스토폴 할아버지의 머리맡에서 조용히 다짐하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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