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89호 2016년 7월 3일
가톨릭부산
나는 밀인가 가라지인가

나는 밀인가 가라지인가                                             

이재웅 안토니오 / 교구평협 부회장 hadan23@naver.com

  아침 일찍 서둘러 버스를 타고 도착한 구포역의 구조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혼자 기차를 타본 지 20여 년이나 지났음을 새삼 느끼며, 시복시성기원 도보성지순례 출발지점인 삼랑진역을 향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묵주를 손에 쥔 채 바라본 창밖의 모습도 예전의 기억과는 너무나 변해 있었다.‘참 많은 세월이 흘렀구나.’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꿈인가? 환시인가? 피범벅이 된 예수님과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오열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함께 있었다. 가혹한 채찍질과 십자가 무게에 짓눌린 예수님께서 넘어지셨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내 안에 있는 가시가 너무나 크고, 덩어리로 뭉쳐진 이기심, 죄의 생각과 행위가 주님을 피멍 들게 하지만, 그분께서는 십자가 형상의 그 가시덩어리를 사랑으로 껴안고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또다시 일어나셨다. 주님의 십자가... 결국 내 모습이었다. 주님이 짊어지신 그 무거운 십자가는 다름 아닌 바로 나였던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님께서 추기경이던 시절 예수님이 세 번째 넘어지셨던 그 자리에서 기도하셨다는 글이 뇌리를 스쳤다.“주님, 주님의 교회는 물이 가득 차 가라앉으려는 배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밀밭에는 밀보다 가라지가 더 많아 보입니다.”지금 묵주를 손에 쥐고 있는 나는 밀일까, 가라지일까?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내 것만 찾아 달려온 지난날이고, 그분의 길이 아닌 샛길을 따라 걸어왔음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밀이고 싶지만, 가라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밀밭에 염치없이 들어온 가라지이지만, 잊고 지낸 것이 분명했다. 시복시성을 기원하면서 걷는 중에도 이런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가라지가 스스로 밀이 될 수는 없을까? 깜부기가 보리가 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의 자명한 이치는 불가능이었다. 그분 능력에 힘입어 변화시켜 주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청했다. 절반쯤 걸었을까. 어느 순간 위안과 평화의 그분 말씀이 한 줄기 빛으로 내 안에 들어왔다.“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마태 13, 38∼39)
  주님! 염치없지만 저는 가라지가 아니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가라지여서 제 부모까지 가라지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당신께서도 손수 뿌리신 씨앗이 가라지가 아니길 바라실 것입니다. 지금 비록 가라지 같은 모습일지라도 꼭 밀의 본 면목을 되찾을 것입니다.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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