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76호 2016년 4월 3일
가톨릭부산
침묵의 의미와 영성생활

침묵의 의미와 영성생활

이영훈 알렉산델 신부 / 노동사목 담당

 “하느님의 뜻을 인식하는 정도는 그가 같은 몸을 구성하는 다른 일원들과 어느 정도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 모두가‘서로를 위한 구성원’이기 때문에, 살아 계시며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뜻도 서로를 통해 신비롭게 전해진다.”(토마스 머튼,『삶과 거룩함』중에서)

  토마스 머튼은 트라피스트 수사신부로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지성인이자 영성가 그리고 저술가입니다. 신학생 시절부터 토마스 머튼의 책을 즐겨 읽고 있지만 아직 그분의 깊은 영성을 다 이해하지도 실천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침묵’이 그러합니다. 제가 이해하는 머튼의 침묵은 단순한 단절이 아닙니다. 침묵은 나 자신을‘하느님께로 이끄는 통로이자 만남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형제들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는 곳입니다. 또한 그들의‘가난과 고통’의 원인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극복하도록 결심케 하는‘출전(出戰) 대기소’입니다. 이것이 머튼이 말하는‘침묵’의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분은 단순한 영성가가 아닙니다. 물론 트라피스트 수도승이었기에‘현장’과의 일정한 거리가 있었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뛰어난‘인권과 평화의 실천가’였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불의와 불평등 그리고 가난의 현실, 정의로움이 없는 형식적인 자선, 군사력 증대와 전쟁을 통한 거짓 평화론, 상품이 되어버린 인간 노동 현실 등 사회 문제에 있어서 그의 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침묵의 의미를 통해 머튼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영성 생활은 따라서, 세상과의 단순한 단절이 아닙니다. 오히려‘참된 나’를 만나고, 내 자신을 하느님께로 향하도록 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께서 세우신 참된 질서에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세상과 더욱더 깊이 만나게 해 주는‘통로’이자, 삶과 거룩함이 만나는‘장소’이며,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형제자매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실천’인 것입니다.
  영성 생활이란,‘영성+생활’임에도 불구하고,‘성(聖)과 속(俗)’,‘영과 육’,‘교회 안과 밖’이라는‘순진한’ 이분법 아래, 기도와 실천을 구분하고, 정의와 사랑을 구분하며 교회와 세상을 구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단절되고 폐쇄된 침묵’이라는‘잘못된 침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영성생활은‘참된-열린 침묵’에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복음 정신에 따라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그들의 상황에 관심과 연대 그리고 구체적인 행동을 실천하고 있다면 우리의 영성 생활은 참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성 생활은 어떠합니까?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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