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66호 2016년 1월 24일
가톨릭부산
‘쉼’의 계명

‘쉼’의 계명

이영훈 알렉산델 신부 / 노동사목 담당

  공휴일 어느 날, 대청동에 있는 바오로딸 서원에 일이 있어 잠시 들렀습니다. 수녀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드리는 동안 주변을 살펴보았는데, 책장이 휑했습니다. 책장에 있어야 할 책들이 다 어디 갔냐고 여쭸더니 재미있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신부님, 책들도 쉬어야 해요.”수녀님들 말씀은 이랬습니다. 책이 오랫동안 세워져 있다 보면 종이들 사이가 벌어져, 책 형태가 흐트러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책을 눕혀놓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조금은 재밌고, 가벼운 이야기였지만 이후 그 광경이 자꾸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 말씀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책들도 저렇게 쉬어야 하는데, 우리 인간들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십계명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계명은 신앙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실제‘쉼’의 중요성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계명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노예일 때처럼, 쉼 없이 그저‘생산과 이윤’만을 위해서 일해야 했던 역사적 경험과 그러한‘쉼이 없는 노동’이란 결국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는 가르침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노동관은 이후 교회 가르침 안에서 이어져 오다가, 1891년 레오 13세 교황님의‘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됩니다. 교황님은 당시 주일에도 쉬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턱없이 적은 임금을 벌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하면서 하느님께서 창조사업 후 쉬셨던 것처럼‘쉼’이란 영혼과 육신을 위한 하느님의 뜻임을 강조하셨습니다.‘쉼을 위한 정당한 임금’또한 하느님의 뜻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책들도 쉬어야지 본래의 책 꼴을 유지할 수 있고, 그 수명이 오래 갈 수 있는데, 하물며 인간은 어떠하겠습니까?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이른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깁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임금 수준이 매우 낮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지만 많이 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삶이 더 고달프다는 말입니다. 인간 영육을 위해‘쉼’을 명령하신 하느님의 이 계명은 결국 노동시간은 줄이는 대신 정당한 임금을 주라는 겁니다. 쉼과 여유가 있는 삶과 노동! 과연 그리 먼 나라 이야기일까요? 오히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나가야 할 세상이 아닐까요?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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