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50호 2013년 12월 25일
가톨릭부산
카메라 버리기

카메라 버리기

이동화 신부 / 노동사목 전담

하도 시간이 빨리 가서 이미 오래전의 일이 되어버렸으나, 나는 꽤 오랫동안 로마에 머물렀었다. 외국이라곤 처음이었으니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매일 매일 내가 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고, 매일 매일 내 발걸음이 닿는 곳은 내가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 차 있을 그 때, 내 호기심을 오랫동안 남기고 싶어 내 인생의 첫 카메라를 샀다. 시간이 허락하는 데로, 그리고 내 눈 앞에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카메라를 꺼내 찍곤 했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멋진 달력 사진이나 예술 사진이 아니라 내가 지금 내 눈으로 보고 있는 것들을 그냥 그대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보고 접하는 모든 것이 나의 평범하고도 단조로운 일상이 되어버렸을 때, 남기고 싶은 사진도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다른 어떤 것이 차지하고 있음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사진이 아니라 카메라였다. 처음엔 작은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 카메라로,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값비싼 카메라가 내 두 손에 들려있었다. 내가 보는 세상을 남기고 싶은 마음 보다는 더 좋은 카메라를 찾고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더 좋은 카메라, 더 많은 기능과 성능이 있는 카메라를 가지면 마치 내가 보는 세상이 달라질 수 있고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백컨대, 그때 내 관심은 사진이 아니라 그냥 카메라 였을 뿐이다. 

되돌아보면, 호기심에 가득 찬 눈은 카메라가 필요했지만, 호기심이 사라진 눈에는 카메라라는 사물이 가지는 묘한 물신성(物神性)만 남은 것이다. 바깥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 사로잡혔던 내 마음 속 자리엔 어느덧 카메라의 성능과 가격과 브랜드 가치가 대신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이 정도 성능의 카메라를 가지면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이 정도 가격과 브랜드의 카메라를 가지면 다른 카메라를 가진 사람과는 다를 것 같은 느낌, 그저 그것이었다. 마치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타고 다니는 것, 내가 살고 있는 곳, 이런 것들을 통해 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 마음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 카메라를 없애버린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맑은 눈과 세상 사람에 대한 연민 가득한 눈은 값비싼 카메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깨닫고 나서였다. 내가 카메라를 아깝지 않게 없앨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내 자신을, 가장 근원적인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으며 오로지 하느님께 받은 내 자신 밖에 없음을 다시 깨닫고 나서였다.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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