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20호 2011년 8월 21일
가톨릭부산
뒷모습이 아름답다

뒷모습이 아름답다

김양희 레지나

온나라가 ‘평창’으로 술렁이고 있을 때 백양산 옥수 약수터에 조용한 혁명을 몰고 온 것은 인성이였다. 큰 기쁨은 나라를 술렁이게 하고 작은 기쁨은 동네 주민에게 감동을 준다. 신문에 안 난 작은 행복, 요즘 나는 소시민의 행복에 곧잘 젖어드는 편이다.

초복과 중복 사이, 새벽이라고 푹푹 찌는 더위가 물러서주는 것도 아니다. 오늘 아침 그녀의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다. 배낭을 내리자 누군가가 퍼뜩 은박 돗자리를 깔았다. 짐 속에선 갖가지 사랑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텃밭에서 가꾼 삶은 감자 한 통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는 거다. 흰 감자와 고구마가 연애를 해서 생긴 거라는 자주색 감자통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잠도 안자고 어두울 때 이 많은 감자를 쪘단 말인가. 제법 큰 보온통을 열자 뜨물색깔 국물도 맛깔스런 시큼한 열무김치가 나왔다. 순자와 나는 번갈아 집게로 열무를 집고는 국자로 국물을 떠 담기 시작한다. 그만해도 푸짐한 인정은 충분하건만 그녀의 보따리는 찐 옥수수에, 노릇노릇 구운 절편까지 풀어도 풀어도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다. 물행주에 커피까지. 아니 이건 누구나 할 수 있어도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푸짐한 음식상으로 신새벽 산천에는 금세 잔치판이 벌어졌다. 산이 좋아 새벽 산책에 나선 이웃들, 자리엔 먼저 연배 직수굿한 1진들을 모신다. 누가 이런 일을? 모여든 어르신들 눈이 먼저 놀라고 마음이 놀라는 건 다음 차례다. 아낙들과 2진들 차례가 되자 드디어 옥수수로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한다. 산새들도 즐거운지 나뭇가지 위에서 청아한 음색으로 목청을 돋운다.

작은 몸짓 어디에 당찬 사랑을 품었을까. 인성이가 준 놀라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해 김장철, 배추 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을 때 애써 가꾼 통배추를 밭고랑 통째로 내놓았었다. 피붙이도 오랜 친구도 아닌 그저 아침 산을 오가며 눈웃음 몇 번 스쳤을 뿐인데 염치없는 우리들은 송구하고 고마울 뿐이었다. 

부부는 가끔 한센인이 사는 마을을 소리 없이 다녀오곤 했다. 남편이 은퇴 후 익힌 색소폰 솜씨로 음악 봉사를 하고 있다는 건 나중에 안 일이었다. 오직 줌으로서 기쁨을 나누는 그 부부는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시를 몸으로 살고 있었다.

산중의 아침 파티가 끝났다. 그녀는 끌고 온 캐리카에 주섬주섬 빈 통을 담고는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산길 저만치서 뒤돌아보며 손 흔들고 사라지는 그들 부부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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