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2호 2011년 2월 13일
가톨릭부산
고향에도 못 가고

고향에도 못 가고

탁은수 베드로

친한 선배가 이번 설 명절에 고향에 못 갔다. 구제역 때문이다. “소들 다 죽는다고 아버지가 이번 설에는 오지마라더라.” 고향 길을 포기한 선배의 힘없는 말투는 끈 떨어진 연처럼 서글퍼 보였다. 명절 연휴에는 기르던 소를 땅에 묻은 농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사실 난 구제역에 큰 관심이 없었다. 돼지고기 값이 올랐다는 것, 소, 돼지를 산채로 땅 속에 묻는 살처분 뉴스 화면이 보기에 불편했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고향을 가로막고, 생명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현실에서 그저 불편한 마음으로 지나치기엔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살처분이라는 말부터가 무시무시하다.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에서 살처분 된 소, 돼지가 300만 마리가 넘는다. 닭이나 오리는 아예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뉴스 화면에서는 살처분 구덩이에 묻힌 가축들의 핏물이 흘렀고 농민들은 더 진한 눈물을 흘렸다. 살처분을 담당한 공무원들도 구토와 환청 같은 고통에 시달린다고 한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산 생명을 땅에다 묻는 일이 비인간적인 처사임을 양심이 알기 때문이다. 

전염성이 강하긴 하지만 다 큰 소의 구제역 치사율은 10% 정도란다. 그런데도 구제역 발병지역의 가축을 모조리 살처분 한 것은 왜 일까? 수출 때문이란다. 구제역 예방접종을 하면 구제역 청정국의 지위를 잃게 되고 그러면 육류 수출의 길이 막히게 된다는 것이다. 돈벌이에 걸림돌이 된다고 수백만의 생명을 땅에다 묻은 것이다. 구제역이 확산된 것도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빨리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대량으로 가축을 키우고 유통시킨다. 비좁은 곳에서 값싼 사료를 먹은 가축들이 전염병에 약해진 건 당연하다. 인간의 식욕을 채우기 위해 농장은 공장이 되고 생명체는 돈으로만 가치를 따지는 상품이 됐다. 

창세기 말씀은 마치 구제역 사태를 경고하는 듯하다. 하느님은 집짐승과 들짐승, 물고기와 새들을 만드시고 보시니 좋았다고 하셨다. 그 뒤에 사람을 만드셨다. 풀 한포기, 말 못하는 짐승도 모두 하느님이 내신 피조물이고 인간도 마찬가지다.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벗어난 생명체는 없다. 다만 사람의 욕심이 하느님이 만드신 생명 질서를 파괴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탐욕은 낙태와 인간복제 등 인류의 생명 질서까지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제 머리카락 하나 마음대로 못하면서 하느님이 내신 생명을 제멋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더 이상 허용돼서는 안 된다. 살처분 해야 할 것은 말 못하는 가축이 아니라 생명질서를 위기로 내모는 인간의 탐욕인지도 모른다.
estak@busanmbc.co.kr 부산MBC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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