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3호 2026년 8월 30일
가톨릭부산
고해(苦海)와 고해(告解) 사이


탁은수 베드로

광안성당 · 언론인


   몸을 지닌 존재의 생로병사에는 예외 없이 고통이 있다는 걸 경험하는 나이가 됐습니다. 소유의 욕망이 허무라는 고통의 자락을 꼭 붙잡고 있었음도 알게 됐습니다. 오래전에도 고통의 수위를 가늠할 수 없었던지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통의 바다(苦海)’라 불렀습니다. 고통은 사람을 단련시키기도 하지만 피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넘실대는 고통의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서양의 철학자들은 우선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라고 권고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감당할 수 있는 절망에 만족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인류의 문명이 아무리 화려해도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하나에, 선사시대부터 반복된 자연 재난에 아직도 속수무책임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것이 인간에 대해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가르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존엄이란 성취로 쌓아 올린 바벨탑이 아니라 부족함을 깨닫고 더 나은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겸손한 수용’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생전에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것은 은총”이라고 하셨습니다. 부끄러움은 죄와 욕망에 무너진 인간이 그 나약함을 인정할 때 생깁니다. 반면에 은총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종교의 영역입니다. 신의 부르심과 용서, 그리고 은총의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이 신앙의 과정입니다. 바로 여기, 인간의 생각이 신앙으로 넘어가는 그 갈림길에 극적인 변화가 이뤄지는 신성한 관문이 있습니다. 고해(告解)성사입니다. 고해는 하느님의 초대와 인간의 회개가 만나는 감격의 순간입니다. 하느님의 용서로 인간이 죄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환희의 시간입니다.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이 그 나약함에 머무르지 않고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 나와 용서와 자비를 청하는 고해성사야말로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닐까 합니다. 고통의 바다를 건너, 고해의 관문을 거쳐 주님의 환대가 눈부신 천국으로의 여정을 그려봅니다.


   고해성사의 은총은 무조건이고 무제한입니다. 생명이 시작된 하느님 나라로 돌아가는 귀향의 티켓이 고해성사를 통해 아낌없이 주어집니다. 천국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면 남은 화두는 고통 가득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는가 하는 것일 겁니다. 언제나 그렇듯 성경은 그 해답을 알려줍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 5,16-18)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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