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39호 2026년 8월 9일
가톨릭부산
파도 속에서, 이미 뻗어 있는 손


박시현 가브리엘라

전포성당 · 『함께』 편집위원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바다는 풍경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다. 자갈치의 어부도, 영도의 조선소 노동자도, 날마다 항구를 오가는 이들도 파도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 오늘 복음의 갈릴래아 호수는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이반 아이바조프스키(Ivan Aivazovsky)의 그림 <물 위를 걷는 그리스도(Jesus walking on water-1890년 작)> 속 파도도, 우리가 날마다 보는 태종대 앞바다의 파도도 다르지 않다.


   이 그림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어도 파도는 그대로라는 점이다. 화가는 파도를 지우지 않았다. 신앙을 갖는다고 해서 태풍이 피해 가지 않듯, 조선업의 불황도, 고령화로 텅 비어가는 어촌 마을도, 청년들이 하나둘 떠나는 이 도시의 현실도 기도한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다른 것을 본다.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며 가라앉을 때, 주님은 파도를 먼저 잠재우지 않으셨다. 성경은 분명히 전한다.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셨다고. 완전히 물에 빠지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가라앉기 시작하는 그 즉시 손을 내미셨다.


   제1독서의 엘리야도 마찬가지다. 싸리나무 아래 지쳐 쓰러진 그를, 하느님은 완전히 무너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먼저 먹을 것을 주시고, 거센 바람과 지진과 불이 아니라 조용한 소리로 다가오셨다. 오늘 화답송의 청원, “주님, 저희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 역시 바로 그렇게 가라앉는 이들을 위한 부르짖음이다.


   이 부분이 우리 도시와 만나는 지점이 있다. 부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도시 중 하나이며, 홀로 지내는 어르신과 1인 가구가 해마다 늘어난다. 통계로는 온전히 잡히지 않는 고요한 가라앉음이 이 도시 곳곳에 있다. 경제적 어려움 속의 이웃, 홀로 지내는 어르신, 말없이 성당에 나오지 않게 된 청년, 오래 안부가 끊긴 교우. 이들은 태풍처럼 요란하게 무너지지 않는다. 베드로처럼, 조용히 가라앉는다.


   바로 그렇기에 주님이 파도를 잠재우기 전에 먼저 손을 내미셨다는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 구체적인 소명이 된다. 누군가 가라앉기 시작하는 첫 순간을 알아채고, 완전히 잠기기 전에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거창한 구원이 아니어도 좋다. 안부 전화 한 통, 미사 후 나누는 짧은 인사 한마디, 옆자리 교우와 조금 더 오래 맞추는 눈 맞춤으로도 충분하다.


   이번 주, 오래 안부를 묻지 못한 이웃 한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먼저 손을 내밀어 보자. 파도가 그치기를 기도하기 전에, 파도 속에서 이미 붙잡아 주시는 그 손을 오늘 이 도시에서 살아내는 일, 그것이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청하는 가장 구체적인 응답이다.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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