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27호 2026년 5월 17일
가톨릭부산
우리는 부산교구민


김진호 바오로 신부

노동사목 부본부장


   여러분은 스스로를 “부산교구민”이라고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우리는 보통 스스로를 천주교 신자, 어느 본당의 신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신원을 이루는 또 하나의 울타리가 있으니, 바로 교구 공동체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모두 부산교구장이신 손삼석 요셉 주교님께 속한 분들이며, 주교님의 권한 아래 거행되는 성사로 신앙생활을 이어 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부산교구민입니다.


   그런데 부산교구민은 부산·울산·김해·양산·밀양에서 태어나 세례받은 사람만을, 또는 한국 국적자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지금 부산교구 안에서는 여러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주 노동자, 결혼 이민자, 유학생들이 주일이면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성당을 찾습니다. 이분들은 손님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부, 곧 부산교구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구를 지나치게 한국어 사용자 교우들 중심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부산교구에는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타갈로그어, 베트남어, 인도네시아어, 동티모르어, 그리고 수어 등 다양한 언어로 기도하는 교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멘’은 어느 언어에서나 ‘아멘’이고, 문화가 달라도 십자가의 의미는 똑같습니다. 사실, 교회는 시작부터 다양한 민족과 언어가 성령 하느님 안에서 만나는 공동체였습니다.(사도 2,1-13 참조)

   그러니 우리는 이주민을 손님으로 여기는 생각에서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를 함께 이루는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이름을 불러 주며, 언어적으로 배려하여 전례와 공동체에 참여할 길을 넓혀 주어야 합니다. 그때 부산교구는 더 풍요로워지고, 더 (초대)교회다워질 것입니다. 낯선 이를 맞아들이는 일은 무엇을 잃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모습을 되찾는 일입니다.


   한편, ‘부산교구화’는 ‘가톨릭화’입니다. 교구 내 체류하는 이들을 교구민으로 보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문법이기 때문입니다.(교회법 107조 참조) 그러므로 이주민 교우들을 부산교구민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문화적·행정적 합병과는 전혀 다릅니다. 부산교구화는 ‘한국화’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이들을 한 식탁으로 부르시는 주님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교구민 여러분, 부산교구는 한국 사람들만의 교구가 아닙니다.(사실 시작부터 그랬습니다) 우리 교구장이신 손삼석 요셉 주교님의 인도를 따라 기도하며 하느님을 찾는 모든 이들의 교구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고백합시다. 우리는 부산교구민입니다.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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