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22호 2026년 4월 12일
가톨릭부산
의심의 손길 끝에 머무는 자비


박시현 가브리엘라

전포성당·『함께』 편집위원


   두 사람의 손끝이 닿을 듯 말 듯한 그 순간 화가는 숨죽여 붓을 멈추었다. 약 700년 전 시에나의 거장 두초 디 부오닌세냐는 〈토마스의 의심〉을 남겼다. 그림 속 예수님은 오른팔을 들어 옆구리의 상처를 드러내시고, 토마스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다. 금빛 후광을 두른 제자들이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믿음과 의심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두초는 질문을 던진다.


   지난 2000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선포하였다. 이 주일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성녀의 자비 신심을 온 교회가 기념하는 날이다. 파우스티나 성녀의 영성 핵심은 하느님의 자비를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었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자비를 입은 이들이 말과 행동과 기도로 이웃에게 그 사랑을 돌려주는 삶이 가능해진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비를 실천하는 것, 그것이 이 주일이 우리에게 건네는 초대이다.


   우리는 토마스를 의심 많은 제자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의 부르짖음은 불신의 말이 아니었다. 그 말 속에는 공동체의 증언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직접 만나고 싶었던 타는듯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마더 테레사의 말처럼 사랑의 반대가 무관심이듯, 신앙의 반대 역시 의심이 아닌 차가운 무관심이다. 이런 의미에서 토마스는 누구보다 간절히 주님을 뵙고 싶었던 열정적인 구도자였다.

   주님은 토마스의 그 흔들림을 나무라지 않으셨다.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시는 부르심 앞에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을 고백한다. 부활하신 몸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몸 안에서 그 상처는 자비의 표징으로 우리의 아픔을 향해 문을 연다. 7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이 그림이 우리 마음을 울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토마스는 혼자가 아니었다. 공동체 안에 머물렀으므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흔들리면서도 머물러 있는 것! 이것이 은총의 자리라는 것을 그림은 조용히 보여준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말씀은 오늘도 흔들리면서 마침내 주님께로 걸음을 옮기는 우리 모두를 향한 축복이다.


   이제 나에게 물어보자. 나의 마음을 닫고 있는 문은 무엇일까? 실패의 두려움일까, 아물지 않은 상처일까, 오래된 의심일까? 토마스에게 먼저 다가가셨던 주님은 지금도 그 닫힌 문 앞에 서서 우리가 손 뻗기를 기다리신다. 그분의 상처를 만지는 순간, 우리의 상처는 자비라는 이름으로 치유될 것이다.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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