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20호 2026년 3월 29일
가톨릭부산
신앙 신분증


탁은수 베드로

광안성당·언론인


   사순절을 시작하는 마음은 늘 무거웠습니다. 회개와 절제의 시간을 보내는데 가벼운 웃음을 흘리고 다닐 수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하면 사순절은 고난을 가까이하며 짐짓 근엄한 얼굴로 지내는 것이 신자의 품격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대축일을 맞고 신자들과 부활 인사를 나누고 나면 그해 부활절의 여정이 마무리되는 것 같았습니다. 부활이 마치 연례행사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부활이 지나고 나면 그뿐. 나는 다시 세상의 먼지를 덮고 여전한 일상의 욕심으로 돌아갔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구원사건이고 나는 그걸 구경하는 주변인에 불과한 건 아닌지, 부활을 보내는 마음이 무거웠던 적이 있습니다.


   요즘 손발보다는 머리 아픈 일이 많아서인지 유독 예수님의 가시관에 마음이 자주 머뭅니다. 날카로운 가시는 예수님의 이마를 뚫고 온몸을 옥죄었을 겁니다. 예수님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도 거친 가시 몇 개쯤은 안고 삽니다. 유혹과 집착, 욕망, 편견 같은 세상의 가시들 말입니다. 이 가시들이 대못처럼 박혀 내 마음속 하느님을 짓누르고 있는 건 아닌지 일그러진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그러고 보면 부활은 나를 속박하던 세상의 가시들을 뽑아내고 대신 하느님과 함께 사는 기쁨을 마음 가득 채우는 시간 아닐까요? 가질수록 커지는 세상 욕심, 끝내는 허무한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 구원의 희망과 천국의 기쁨이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새롭게 내리는 날 말입니다. 마귀를 끊고 죄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처음 모신 첫영성체의 감격을 기억합니다. 부활을 통해 살아나신 예수님을 다시 뵈옵는 감격이 충만하기를 기대합니다. 

   

   환한 미소를 남기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기쁨은 신앙인의 신분증”이라고 하셨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도망쳤던 사도들이 예수님 부활을 목격한 뒤 죽음을 감내하며 선교에 나설 수 있었던 건 부활을 통해 확실한 ‘신앙의 신분증’을 얻었기 때문 아닐까요? 구원을 선물 받고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들이라면 우거지상 대신 감사와 기쁨의 신앙생활로 우리의 신분을 증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비록 세상 불안에 자주 넘어지는 나약한 나이지만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데 이보다 더 확실한 신분보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시편 118(117),24) 주님께서 주신 날이 하루뿐이겠습니까? 기뻐하며 즐거워할 날이 하루뿐이겠습니까?  세상 걱정 대신 매일매일을 부활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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