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세민 윤일요한
가톨릭신문 기자
수년 전,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내적 고통을 가슴에 안고 성전에서 홀로 기도했습니다. 가족들 얼굴이 떠올라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 제대에는 성체현시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성체를 바라보며 절실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귀가 아닌 가슴 속으로 주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나만 믿고 아무 걱정하지 마라.”
그 뒤로는 정말로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당당하게 힘든 일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고통을 견디며 잘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인생에서 좋은 일만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상 누구의 고통이 더 큰지 비교하는 것조차 무의미합니다. 각자가 큰 슬픔과 고통을 마주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이겨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또한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행복합니다.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마르 14,36)라고 부를 수 있고, 무엇이든 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라자로의 죽음으로 그의 집안은 크나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누이 마르타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2) 과연 예수님께서는 무덤으로 가 라자로를 부르셨고, 라자로는 걸어서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어둠의 시간은 다가옵니다. 저마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세상의 모든 빛을 차단한 채 마음의 무덤 안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 어둡고 서늘한 공간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가두고, 신앙마저 무력해진 듯한 갈증을 느낍니다. 그러나 피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무덤 밖에서 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계실 예수님을 떠올리고 느낍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그저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보다 더 아파하며 곁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눈물을 느낄 때, 우리는 라자로의 무덤을 막고 있던 돌과도 같은 절망을 치워버릴 수 있습니다. “이리 나와라.”(요한 11,44)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어둠의 무덤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