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09호 2026년 1월 18일
가톨릭부산
작가의 물고기
 
윤경일 아오스딩
좌동성당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명동성당 갤러리1898에서 한 작가가 전시회를 가졌다. 성경 말씀을 배경으로 제작된 작품들은 언뜻 보면 회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비단 조각을 한 땀 한 땀 정교하게 바느질한 공예 작품이다. 작품의 아이디어가 독창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작업 과정에서 쏟아부은 열정과 끈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난 후 가톨릭센터 대청갤러리에서 다시 전시회가 열렸다. 작품의 빼어남은 여전했으나 이번에는 간절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그사이 작가는 ‘소뇌 위축증’이라는 신경계 질환을 앓고 있었다. 이 병은 근본적 치료 대책이 없다고 하니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오프닝 행사에 초대받아 갔다가 작가의 인사말이 가슴을 저미게 했다. 손놀림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작품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우울증에 빠져 극단적인 생각마저 들었지만,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건 하느님께 자신을 의탁했기 때문이란다. 사라져 가는 기력을 되살리고자 작가는 매일 복음을 발성 연습하듯 소리 내어 읽었고, 기도 중에 하느님의 기적을 바랐는데 소망하던 기적이 마침내 일어났단다. “작품 활동을 더는 할 수 없지만 이렇게 전시회를 열 수 있게 해 주시니 바로 주님의 기적이 아닙니까!” 거기 모인 모든 이들이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작품 한 점이 나에게 왔다. 루카 복음 5장 4~6절에 나오는 갈릴래아 호수에서의 고기잡이 기적에 관한 작품이다. 밤새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시몬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인자한 손길로 격려하시며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고 하셨고, 베드로가 그렇게 따르자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양의 물고기가 잡힌 형상이었다.

   작품 속의 물고기들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배고픔의 해소, 풍요로운 기쁨, 어부의 노고, 번식과 다산... 생각해 보니 물고기는 다름 아닌 예수님의 넘치는 사랑을 나타내고 있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가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라’ 뇌가 위축되어 운동 기능이 통째로 상실되어 가면서도 원망 대신에 어떻게 저런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밤이 깊어갈수록 별이 잘 보이듯 절망 속에 빠져 있는 삶일수록 역설적으로 은총의 빛을 더 잘 바라볼 수 있는가 보다.

   나 역시 예수님의 사랑에서 멀어지려는 순간마다 이 작품을 바라보며 마음을 새로이 가다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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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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