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2호 2025년 10월 6일
가톨릭부산
생손앓이
생손앓이 
 
박선정 헬레나
남천성당ㆍ인문학당 달리 소장

   너는 엄마에게는 생손이다. 자세히 보면 각기 다 다른 길이와 모양을 가진 손가락 중 유독 너는 다른 손가락에 비해 조금 더 약했던가 보다. 그러니 감염에 조금 더 예민했을 거야. 같은 무게에도 끄떡없는 손가락이 있는가 하면, 힘겨워하고 예민 해하는 손가락이 있더라고. 참 신기하지, 하느님은 왜 우리의 손가락을 다 다른 길이로 만드셨을까. 그런데, 여전히 내 몸에 붙어있고 내 몸의 일부인듯한데 내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지, 바로 ‘생손앓이’를 할 때야.

   
그러고 보니 너는 생손앓이를 해 본 적이 없구나. 엄마는 어릴 적 아주 심하게 경험한 적이 있어. 흙장난하다가 아마 어디선가 균이 들어갔겠지. 처음에는 그냥 조금 아프고 손가락이 벌겋게 부어오르는 정도지만, 그 손가락은 점점 더 심하게 곪아가고 나중에는 고름이 나고 썩어들어갔지. 그대로 놔두면 손가락을 절단해야 한다고 어른들이 말했어. 그래서 아파도 꾹 참고 고름을 짜내고 약을 발랐지. 아무리 아파도 말이야. 어느 순간, 퉁퉁 부어올랐던 ‘손가락의 화’가 삭고 마침내 손톱이 빠지기 시작했어. 그 단단한 손톱이 썩어서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균도 함께 나가나 봐. 그때 내 몸에서 빠져나온 손톱을 보면서, 생손을 앓는 손가락 전체가 절단되는 걸 막기 위해 혼자 모든 죄를 지고 떠나는 순교자 같다는 생각을 했지.

   
아들아, 딸아. 너가 지금 앓고 있다면, 너는 생손앓이를 하는 그 손가락인 거야. 어쩌다가, 하필, 너에게 균이 들어간 거야. 조심하게 곪고 썩어들어가는 것처럼 아플 수 있어. 하지만 너, 손가락을 지닌 엄마인 몸은 결코 너를 잘라내지 않을 거야. 너를 잃지 않으려고, 너를 더 자주 들여다보면서 끝없이 고름을 짜내고 약을 바르고 치료할 거야. 왜냐고? - 손가락은 그 사실을 잘 모르겠지만 - 손가락은 몸 ‘전부’의 ‘일부’니까. 너와 나는 서로 연결된 ‘우리’니깐. 그래서, 너 안에 고인 고름이 혈관을 타고 신경을 따라 엄마의 가슴에서는 피고름으로 흐르는거야. 그러니, 부디, 너와 함께 아파하는 더 큰 누군가가 있음을 기억해줘. 그렇게 지금의 생손앓이를 이겨내 줘. ‘큰 누군가’가 너와 함께 아프고 함께 이겨내고 있음을 기억해줘. 하지만, 너의 감염이 온몸으로 퍼져 내 곁의 다른 손가락들까지 모두 위험에 빠뜨릴 정도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안 돼. 돌아올 수 있을 만큼, 손톱 하나의 희생으로 끝날 만큼, 그만큼 방황하고 돌아와줘.

   그렇게 다 아프고 손톱이 빠져나가고 새 손톱이 돋아나는 그 날, 엄마는 온 세상과 함께 축하하며 잔치를 벌일 거야. 그리고 엄마는 그날의 잔칫값을 벌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을게.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루카 15,31-32)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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