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36호 2026년 7월 19일
가톨릭부산
기다림


이주홍 디모테오 신부

밀양성당 주임


   세상은 밀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것처럼 선과 악이 공존합니다. 악이 존재하기에 선은 더욱 드러나게 되고 그 안에서 더 강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선이 드러나기를 기다릴 수 없어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게 됩니다. 일꾼이 주인에게 조르듯이 “주님, 어찌하여 저 못된 놈들을 그냥 두십니까? 어서 악인들을 끝장내 주십시오.”라고 투덜거리기도 합니다. 마치 가라지가 양분을 다 섭취하여 정작 밀은 비실비실 말라가고 있다는 듯이,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도 호의호식하는 바람에 의인은 고난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기까지 합니다. 심지어는 세상의 악의 존재로 인해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느님은 심판자로서 세상의 악을 내버려두지 않으셔야 하고, 심판자에 의해 세상의 악은 사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들의 생각과는 달리 예수님은 기다리는 삶을 사셨습니다. 공생활을 준비하기 위해서 30년의 시간을 기다리셨고, 공생활 전 광야에서 40일간을 기다리셨으며, 제자들에게 하느님을 보여주시기까지 3년간을 기다리셨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기다림을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그녀를 죽이고자, 단죄하고자 달려드는 마지막 한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그분께서는 끝까지 기다려 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예수님의 기다림 속에는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다림 속에 제자들의 사랑, 용서받은 여인의 사랑은 더욱 큰 결실을 맺게 됩니다.


   물론 그러한 기다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유혹과 고통 속에서 기다림은 정말 길게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다림 속에서 주님과 함께 머물 때, 힘들게만 느껴지는 기다림은 더 이상 우리에게 고통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은총의 순간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이 풍성하다.’라고 말씀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박해 시대에 많은 순교 성인들이 나오며 어려운 시기에 영웅이 나오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치입니다. 


   이처럼 악은 나쁘지만, 악의 존재는 인간의 선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사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기다림은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는 시간이며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시간이 되고, 우리의 기다림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설렘 가득한 시간이 됩니다.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며, 우리 마음을 두근두근 콩닥콩닥 뛰게 하는 기분 좋은 기다림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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