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62호 1970년 1월 1일
가톨릭부산
무화과나무 한 그루와 나
무화과나무 한 그루와 나
 
 
한윤식 보니파시오 신부
오륜대순교자 성지사목 겸 교회사연구소장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며 회개하라고 촉구하시는 예수님! 이 예수님이 들려주신 비유 말씀 속에 등장하는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가 ‘나’와 결코 무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이 주인이신 포도밭이라는 세상 속에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나’를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열매도 맺지 않고 그저 땅만 차지하고 있어 당장이라도 잘려나갈 처지에 놓인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 이 무화과나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만 지니고 있을 뿐,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함에 있어 그리스도인다움을 드러내지 못하는 ‘나’, 그래서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나’일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 예수님 보시기에도 사랑인지 되묻지 않고, 내 방식대로 하는 나만의 사랑에 갇힌 ‘나’일 수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 많은 봉사와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실상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믿고 희망하는 것을 똑같이 믿고 희망하며 살아가는 ‘나’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넘어져 있는 ‘나’일 수 있습니다. 
 
   비유 속에 등장하는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가 천주교 신자로 살아가는 ‘나’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비유 속 포도 재배인이 포도밭 주인에게 청한 ‘올해’를 소중히 여겼으면 합니다. 이 ‘올해’라는 시간이 그리스도인인 ‘나’에게 주어진 시간, ‘나’의 회개를 위하여 하느님이 인내로이 허락하신 마지막 시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영원을 결정하는 소중한 순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올해’라는 시간을 의식하며, 포도 재배인이 주인에게 아뢴 그 말씀을, 하느님께 바치는 ‘나’의 약속과 다짐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루카 13,8-9)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는 하느님, 그리스도인인 ‘나’는 이 하느님께서 찾으시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한 그루 무화과나무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의 이름은 ‘사랑’입니다.
 
   2025년 희년에 맞이하는 사순 시기, 더 많은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는 ‘나’의 노력이 계속되는 은총의 시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