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57호 2025년 2월 16일
가톨릭부산
행복은 상대적이지 않다.
행복은 상대적이지 않다.

 
원정학 바오로 신부
주례성당 주임

 
   우리는 보통 그가 잘사는 것을 보고, 건강하고 잘 먹는 것을 보고, 웃는 것을 보고 행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와 반대로 그가 형편이 어렵고, 잘 챙겨 먹는 것도 병원 치료를 제대로 받는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속상해 우는 것을 보면 안타깝고 불행하다고 여깁니다.
 
   사실 여러 물질적·물리적 제약 때문에 작은 것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때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난 행복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타깝고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자 애를 씁니다. 자녀들에게 가난을 주지 않으려 좋은 것을 배불리 먹이고, 능력 있는 아이로 키워 사회에 나가서도 넉넉한 삶을 살도록 교육에 특별히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행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가난이 싫습니다. 가난으로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주림에 고통받기보다는 세상을 살지 않는 것이 더 낫고, 가난 속에서 행복은 찾을 수 없다고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원망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예수님은 그런 너희가 ‘행복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날에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의 차지가 될 것이고, 배부르며, 웃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이는 복음서 곳곳에서 드러나는 반전의 이야기와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날에 양과 염소를 나누고 하느님 나라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로 태워지는 곳으로 간다는 이야기(마태 25,31-46 참조), 부자와 굶주린 나자로의 이야기(루카 16,19-31 참조) 등 세상에서의 삶과 지위가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다르다는 반전의 이야기들은 마치 지금 가난하게 살면 부자가 되고, 세상에서 부유하고 모든 것을 다 누리는 이들은 잃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비추어 집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예수님께서 하시고 싶었던 이야기는 ‘가난하게, 굶주리며, 울면서 살아라’가 아니라 기준도 없고, 끝도 없는 욕망의 물질적 추구보다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을 우선으로 하기보다는 가난한 이들을 돌아보며 나누고, 이웃에게 양보함으로써 자신의 배고픔마저도 기쁨으로 바꾸고, 고통에 함께 슬퍼하면서도 서로 위로하고 함께 나아감으로 슬픔을 희망과 더 나은 기쁨으로 바꾸는 것이 ‘참 행복의 길’이 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세상 창조의 목적이며 상대적이지 않고, 사라지거나 끊어지지 않는 영원성을 지닌다고 봅니다. 부유함과 배부름, 웃음은 그 자체가 행복이 아니며, 자신도 모르게 끊임없는 갈망의 늪에 빠지게 되는 위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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