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39호 2024년 11월 3일
가톨릭부산
사랑의 착각
사랑의 착각
 
신진수 신부
송정성당 주임

 
   여러분은 혹시 적당한 신앙생활과 손해 보지 않는 봉사활동 정도로 하느님의 축복과 삶의 기적적인 변화를 꿈꾸고 있지는 않습니까? 많은 신앙인들이 하느님과 적당히 사랑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 불안해하지 않고, 이웃을 적당히 사랑하고, 미워하는 삶으로 자신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믿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적당히 지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마음, 목숨, 정신, 힘을 다하라고 하셨고,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마르 12,29-31참조)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사랑의 불구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자신이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것(들어라)입니다. 신앙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멈추지 않고, 잠깐의 시간조차 내지 않고, 기도하더라도 자기 말만 합니다. 
 
   자신이 하느님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를 확인해 보려면, 이웃(배우자, 가족, 교우들)에 대한 사랑을 점검해 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이웃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착각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이 자신에게 피해나 손해, 조롱과 모욕을 주지 않을 때까지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느님이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이 생기지 전까지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에 실패하는 이유는 세상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고도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고, 세상이 주는 위로를 끊어내지 않고도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에서 ‘양다리’를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위로를 끊어내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인 불구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사랑없는 껍데기와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게 되고, 하느님께서 아파하시는 것을 안 하게 되고, 하느님을 위로해 드리는 것에서 기쁨을 찾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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